━70대 노인이 장기 미제 사건, 그것도 연쇄살인범을 쫓는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한국영화 사상 전례가 없었던 이야기지. 나에게 기회에 와서 잘 됐다고 생각했다.”
━시나리오를 읽고 받은 느낌은.
“사실 처음엔 그저 그랬는데…. 제피가루 작가의 원작 웹툰 ‘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를 보고 마음이 바뀌었다. 소재도 그렇고, 여러모로 괜찮더라고. 웹툰을 보고 김홍선 감독이 쓴 책(시나리오)을 다시 읽으니 그제야 감이 왔다. ‘아 이거 이야기 되겠구나’ 싶더라고.”
━작품을 고를 땐 역시 이야기가 우선인가.
“책이 중요하지. 전체 틀이 좋아야 된다. ‘내가 소화할 수 있는 역할인가’ ‘캐릭터가 좋은가’는 그다음 문제고.”
━근데 웹툰도 챙겨 보나.
“아무렴 원작인데 봐야지. ‘내부자들’(2015, 우민호 감독) 때도 챙겨 봤다. 만화는 뭐랄까. 소재의 제약도 없고, 도저히 일반 카메라로는 잡을 수 없는 앵글이라든지, 영화와 다른 매력이 있다. 일단 구라가 세잖아(웃음).”
“각이 서 있고, 센 면모가 많았던 이전 캐릭터들과는 확실히 다르지. 소시민이라고 해야 하나. 그렇다고 말랑한 성격도 아니다.”
━하긴 건물주기도 하고.
“그렇지(웃음). 내가 고수 개념의 역할을 죽 해왔는데, 심덕수도 그런 면이 아예 없진 않다. 남한테 신세 안 지고 근검절약하며 하나둘 건물을 갖게 된 사람이고, 한 동네에서 수십 년을 산 터줏대감이라 동네 사정에도 빠삭하다. 세입자가 월세를 제때 안 내면 ‘왜 그따위로 사냐’며 야박하게 굴지만, 아예 경우에 어긋나는 ‘갑질’은 안 한다. 그런데 그 동네에서 연쇄살인 사건이 벌어지고, 세입자 하나가 실종된 거다. 심덕수 철학으로는 절대 용납이 안 되는 거지.”
━심덕수가 낯선 침입자로부터 동네를 지킨다는 구도만 놓고 보면 예전 서부영화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 영향도 있었겠지. 제피가루 원작만 봐도 제목부터 ‘아리동 라스트 카우보이’고. 나 젊은 시절에 서부영화가 상당한 인기였다. 50년대 였나…, 명국환 선생님의 ‘아리조나 카우보이’라는 곡을 축음기로 열심히 듣던 기억도 난다. ‘카보이~ 아리조나 카보이~’하는 노래 알지? 아, 원작에도 이 노래가 직접 등장하더라고. 아마 동네 이름 아리동도 아리조나에서 따온 것 같더라.”
━백윤식과 심덕수의 공통점이 있다면,
“남에게 폐 안 끼치는 선에서 최대한 열심히, 그렇게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어왔다는 것 정도가 아닐까? 그리고 꼬장꼬장하다는 것도. 하하.”
━시나리오만 봐도 구르고 맞고 넘어지는, 격한 액션이 많던데. 힘들지 않았나?
“힘들기야 한데, 은근히 내가 액션을 안 한 영화가 없다. ‘싸움의 기술’(2006, 신한솔 감독)에서는 일당백의 싸움 고수였고, ‘내부자들’에서도 멋지진 않지만 리얼한 액션을 소화했었다. 고생스러웠지만,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지.”
“처음 작업해보는데, 성격이 좋아. 오죽하면 내가 ‘애교 동일’이라고 부를까. 연기에서는 동일이도 워낙 베테랑이라 뭐 말이 필요 없었다. 동일이가 애드리브 위주로 연기할 것 같다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오히려 대본에 굉장히 충실하다. 그리고 굉장히 감성적인 면이 많더라고. 상대하면서 순간순간 실제 상황처럼 느껴질 정도로.”
━평소 애드리브를 즐기나.
“오히려 반대지. 어느 정도 양념처럼 들어갈 수 있겠지만, 남발하는 건 싫다. 영화의 큰 틀, 감독이 가진 큰 그림이 더 중요하거든.”
━‘어차피 대중은 개돼지입니다’‘너 그러다 피똥 싼다’ ‘시츄에이션이 좋아’처럼 오래 기억되는 명대사를 많이 남겼다.
“(‘범죄의 재구성’(2004, 최동훈 감독)에서 했던) ‘청진기 대면~ 진단 딱 나와!’ 요것도 있었고(웃음).”
━‘반드시 잡는다’의 명대사라면.
"글쎄, 이번 영화에서는 ‘205호!’ 205호 살다가 실종된 여성을 쫓느라, 입이 닳도록 ‘205호!’를 외쳤거든. 영화 보고 나면 머릿속에 맴돌 것 같다.”
"‘내 역할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하는 부분까지 염두하며 작품에 임하진 않는다. 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야 있겠지만, 결국 배우는 배우, 작품은 작품이라고 본다.”
━닮고 싶은 배우로 꼽는 후배들이 많다. 무엇이 지금의 배우 백윤식을 만들었다고 보나.
"70년대 KBS에서 연기를 시작했다. 지금은 논란도 많고 방송사 위상이 예전만 못하지만, KBS가 당시만 해도 작품성 높은 작품을 많이 만들었다. ‘TV문학관’(1980~2012, KBS)으로 대한민국 문학 전집을 순례하다시피 했으니까. 이상화, 이중섭, 나운균 선생님 등등 역사적인 인물부터 시작해 안 해본 역할이 없지. 배우로서 나는 여한이 없다.”
━작품운도 중요하겠으나, 결국 배우로서 많은 작품을 경험하며 노력하는 게 최선이라는 말로 들린다.
"정공법으로, 순리대로, 최선을 다하는 거지 뭐, 별거 있나. 이게 평범한 진리 같지만 사실 가장 어려운 문제기도 하다. 인생이란 게 그렇더라고. 재능이 출중해도 뜻대로 안 될 때가 허다해. 어떤 때는 희로애락이 한꺼번에 밀려오기도 하고. 그러니 벌 수 있나. 지금 현재에 충실하며, 노력하는 수밖에.”
백종현 기자 baek.jong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