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하면 코가 길어지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나무인형. 굳이 설명이 필요 없는 캐릭터 '피노키오'다. 1831년에 쓰인 동화 『피노키오의 모험』을 통해 세상에 처음 알려졌으니 그 나이가 무려 200살에 가깝다. 월트 디즈니가 만든 애니메이션 '피노키오'(1940)도 77세다. 그런데 지금 할리우드에선 다시 '피노키오' 영화 제작 붐이 일고 있다.
현재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에서 준비하고 있는 '피노키오' 영화만 4편. 영국에선 연극으로 도전장을 냈다. 영국 국립극단(National Theatre)이 오는 12월 1일부터 연극 '피노키오'를 무대에 올리는 것.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최근 영국과 미국에서 내로라하는 제작자들과 영화·연극 연출자들이 '피노키오' 리메이크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21세기 피노키오의 귀환'이다.
할리우드에서 메이저 제작자, 감독들 제작 경쟁 치열
현재 제작 준비중인 영화만 4편
영국 국립극단(NT)은 12월 1일부터 연극 상연
매력 넘치는 캐릭터력에 사회 풍자 메시지까지 재조명
네 편의 영화, 한 편의 연극
'아이언맨'에서 주역을 맡았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역시 '어메리칸 뷰티'의 제작자인 댄 징크스와 함께 손잡고 영화를 준비 중이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아내와 함께 제작에 직접 참여하는 동시에 피노키오를 창조한 할아버지 목수 제페토 역을 맡기로 했다.
'헬보이' '판의 미로' 를 연출한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피노키오'를 재해석한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 제작을 추진하고 있다. 그로테스크한 영상미로 유명한 델 토로 감독은 이미 10년 전에 피노키오 영화화를 선언한 인물. 그만큼 피노키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러나 투자사를 제대로 찾지 못해 구체적인 제작 일정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영화 '마지막 황제'의 제작자로 유명한 영국 출신의 제작자인 제러미 토마스도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그는 이탈리아 감독 마테오 가로네와 함께 손을 잡았다. 가로네 감독은 고딕풍의 미장센에 호러와 판타지를 섞은 영화 '테일 오브테일즈'를 연출한 인물. 이들의 '피노키오'는 제페토와 피노키오 역을 맡을 소녀(소년이 아니라 소녀다!) 까지 캐스팅이 이뤄진 상태다.
한편 영국 국립극단은 디즈니 측과 협업해 존 티파니 감독의 연출로 완전히 새롭게 재해석한 피노키오를 무대에 올린다. 티파니 감독은 지난해 개막한 '해리포터와 저주받은 아이들' 을 원작자인 조앤 롤링과 함께 집필하고 연출한 인물. '해리포터…'로 지난 4월 영국 공연계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올리비에 상’ 시상식에서 작품상· 연출상·남녀주연상 등 9개 부문 상을 휩쓴 그가 어떤 '피노키오'를 보여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친근한 '동화' 재조명 경쟁...왜?
열림원 출판사의 정중모 대표는 국내에서 '피노키오'가 가진 문화 콘텐트의 잠재력을 비교적 빠르게 알아보고 준비해온 인물. 피노키오 완역본을 비롯해 마사 판슈미트·로버트 잉펜의 그림책 등 관련 서적을 다수 출간하고 2013년부터 피노키오 뮤지엄(관장 이상영)을 운영하고 있다. "출판사를 경영하며 동화 시장을 오랫동안 지켜봐 왔다"는 그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더불어 '피노키오' '빨간 모자' 등 3개 작품의 인기는 남다르다"고 말했다.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고, 재해석할 여지가 풍부한 동화로 평가받는다는 것. 또 동화에 곁들여진 판타지는 세계적인 일스트레이터나 아티스트의 창작욕을 자극하는 '열린 텍스트'로서 매력이 크다고 덧붙였다. 작가의 상상력에 따라 시각적으로도 표현할 요소가 무궁무진한 작품이라는 점에서다.
'피노키오'의 매력에 대해 '마지막 황제'의 제작자인 제러미 토마스는 "시대를 초월하는 이야기"라는 점을, 가로네 감독은 "어둡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꼽는다. "검은 토끼들, 죽은 소녀의 목소리, 저절로 커지는 코, 당나귀로 변한 소년 등 더 끌어내고 발전시켜 볼 만한 주제가 그득하다"는 얘기다.
피노키오는 어떤 작품?
시대를 초월한 다층적 매력
자유분방한 캐릭터
대구가톨릭대 국문과 김효신 교수 역시 "거침없이 행동하는" 피노키오의 성격에 주목한다. "책을 팔아 인형극을 보러 가고, 공부보다 노는 것을 더 좋아하고, 고양이와 여우의 얼토당토않은 꾐에 쉽게 넘어가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자리 합리화에 당당"한 피노키오는 평범한 아이들의 속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인간과 사회 풍자, 과학기술에 대한 경고까지
유 교수는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간다. "21세기에 다시 읽을 때 작품에 담긴 과학기술 발달에 대한 우려까지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무 인형이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설정에서 '포스트 휴먼 사이보그의 원형'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다. 유 교수는 "피노키오의 모험은 첫 부분부터 인간과 인간이 만든 피조물 사이의 갈등을 보여준다. 제페토가 피노키오를 만들었지만, 피노키오는 만들어진 순간부터 제페토의 의사와 상관없이 스스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고 말썽을 부린다는 점에서 포스트 휴먼 시대의 문제까지 경고하는 작품으로 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