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튿날 밤 취재를 마치고 같은 숙소로 돌아왔더니 어제의 실금이 3m 길이로 늘어나 있었다. 동전이 들어갈 정도로 틈도 벌어졌다. 규모 3.6을 포함해 많은 여진이 이어졌기 때문일 것이다. 순간 ‘씻는 중에 저 틈이 더 벌어지면 어쩌지’ ‘자다가 갑자기 모텔이 무너지면’ ‘3층이면 죽지는 않겠지’ 같은 생각이 스쳐 갔다. ‘별일 없겠지’ 어제의 이성적 판단은 어느새 공포감으로 바뀌고 있었다.
머리가 쭈뼛해지는 기분을 느끼고야 이재민의 공포에 공감하게 됐다. 지진 피해를 본 집에서 벗어나 포항시 흥해체육관에 모인 수백 명의 이재민은 작은 여진에도 비명을 질렀다. 밤새 잠 못 이루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아늑했던 내 집 벽에 금이 가고 유리창이 깨지는 일을 몸소 겪어 보지 않으면 그 두려움과 낭패감을 알기 어렵겠다 싶었다.
포항시 흥해읍의 대성아파트 B동에서 작은 희망을 봤다. 같은 단지 E동은 기울어져 주민 대부분이 피신했다. 그러나 지난 18일 늦은 저녁 아파트에서 만난 주민 이명숙(53)씨는 결연했다. “여긴 우리 가족의 삶의 터전이어서 깨끗이 청소했어요. B동은 대피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니까요. 두렵긴 하지만 계속 피할 수만은 없잖아요.”
두려움을 이겨 내려는 그들을 어떻게 응원해야 할까. 일단 추운 겨울을 앞두고 이주민 주거대책이 필요하다. 그들이 믿고 의지할 수 있도록 포항 지역 건물 전체에 대한 안전진단도 필요하다. 무관심했던 건축물 내진 강화방안, 지진 대비 체계는 중장기 과제다. 지금 이 순간 이재민의 작은 두려움에도 귀 기울여 대비책을 정비해 가지 않으면 지진에 안전한 대한민국을 기대하기 어렵다.
송우영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