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마다 다른 장애를 가진 10여 명과 경찰관 등 자원봉사자 20명이 지난 17일 오전 8시 경북 포항시 북구 환호동 환호여자중학교 운동장으로 모였다. 환호여중은 앞서 15일 포항 지진으로 70여 명의 이재민이 모였던 대피소다. 빨간 5t 트럭을 몰고 온 이들은 도착하자마자 트럭에서 무·배추 등 짐을 뺐다. 추운 날씨 탓에 목장갑, 고무장갑을 두 세 개씩 꼈다.
이들은 '사랑해 밥차' 회원들이자 봉사단체 '행복나눔봉사단'과 '금복주'에서 온 자원봉사자들이다. 대구에서 14년간 밥차를 운영해온 밥차 베테랑들이기도 하다. 이들은 지난해 경주 지진 때도 대피소인 내남면 마을회관에서 밥차를 운영했다. 당시엔 뷔페식으로 100인분의 점심을 차렸다. 이번엔 17일 점심·저녁, 18일 점심 등 이틀간 총 500인분의 음식을 마련했다.
시각·청각 장애인, 국가 유공자 등 장애인과 봉사자 20여 명
17일 오전 대피소인 포항 환호여중에서 '사랑해 밥차' 운영
이재민 100여 명 위한 소고기 국밥 준비…"먹고 꼭 힘내길"
'사랑해 밥차'는 2004년 3월부터 운영을 시작했다. 길거리에서 사물놀이, 통기타 등의 공연을 하던 '사랑해장애인예술단' 소속 회원 5명이서 마음을 합쳤다. 당시 한 달간 공연을 해서 번 수익은 30만원. 모두 이 돈을 밥차 운영에 쓰는데 동의했다.
현재 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점심때마다 대구 지역의 공원 등을 찾아 어르신 700명에게 밥차를 제공하고 있다. 실제 이날 오전 내내 최단장의 휴대전화에서 "언제 오느냐"라는 전화가 빗발쳤다. 최 단장은 "오늘은 이재민들을 도우러 왔다"며 환하게 웃었다.
구미란(60) 행복나눔봉사단 회장은 "아무래도 춥고 체력도 떨어질 것 같아서 소고기가 듬뿍 들어간 소고기국밥을 만들었다"며 "오늘은 베테랑 요리사들만 불렀다"며 웃었다.
야간근무를 마친 경찰관 김종기(47) 대구 남부경찰서 교통안전계 경사도 일손을 도왔다. 그는 3년 전부터 밥차에 합류했다.
함께 온 아내 정미현(48)씨는 "야간근무가 끝나면 좀 쉬어야 하는데, 늘 밥차로 달려간다. 이날도 오전 6시 근무 끝나고 달려왔다"고 말했다.
류연수(51) 팀장은 "바로 옆 동네 아니냐"며 "밥차 측에서 도와달라 연락이 왔길래 달려왔다"고 했다.
사내 참사랑봉사단 단장인 송상수(71)씨는 "대구에서 원래 함께 봉사활동을 했다. 오늘은 이재민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으로 왔다"고 말했다.
이순조(72)씨는 "사실 한 마디가 없는 엄지 손가락이 좀 시리긴 하다"며 "겨울에만 그렇다. 봉사 활동하다 보면 다 잊는다"고 웃었다. 다들 "봉사활동을 하면서 행복을 느낀다"고 입을 모았다.
지난 15일 지진 이후 3일째 대피소에 있는 김가연(10)양은 "음식이 하나도 짜지 않고 맛있다"며 "정성을 담아서 만들어 주셔서 그런지 힘이 난다"고 고마워 했다.
작은 고민도 있다. 내년이면 이 차량도 10년째다. 이제 노후 경유차 정기검사를 6개월마다 받아야 한다. 최 단장은 "거의 매일 밥차를 운영하고, 쉬는 날엔 또 공연을 해야 하니 노후 차 관리에 대한 고민도 크다"고 말했다.
포항=백경서 기자 baek.kyungse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