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8시30분에 따뜻한 물에 샤워하고 나왔다. 결전의 수능을 위해 지난주부터 '오후 9시 취침'을 지켰다. 뉴스를 보던 형이 말했다. "야 어떡하냐. 포항 지진으로 수능 1주일 연기됐네."
"에구, 소고기뭇국은 그냥 내일 아침에 먹어야겠다."
내 수능시험 때문에 하루 휴가를 낸 엄마도 정신을 가다듬으며 말했다. 엄마는 수능 날 내 점심 도시락으로 내가 좋아하는, 속이 편한 소고기뭇국을 냉장고에 넣어 두셨나 보다. 시금치도 데치시던 엄마의 말을 듣고서야 현실이 느껴졌다. 엄마는 휴가를 미리 써 다음 주 수능에는 반 차를 내야겠다고 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 한두 해 동안은 'IMF 사태'라는 시기였다고 한다. 당시 은행원이던 큰아버지는 "책상을 빼는 동료들을 보며 조마조마해 했다"고 말한다. 그러니 취업 잘되는 공대, 아니면 공무원이 최고라는 잔소리를 매년 명절 반복하신다.
2002년 월드컵은 너무 어렸을 적 일이라 기억이 없다. 국가대표팀이 4강에 진출했었다니. 기적 같은 일이다. 월드컵에 관한 내 첫 기억은 5학년 때, 2010년 남아공 월드컵 16강 진출이다. 우루과이에 패한 16강 전을 밤늦게 아빠랑 같이 봤다. '반지의 제왕'이었다는 안정환은 우리 세대에는 그저 예능감 있는 아저씨일뿐이다.
그해 한 번이라도 수업을 쉰 학교는 전국 7262개(학년ㆍ학급 휴업 포함)로 전체 초ㆍ중ㆍ고교의 39.9%였다(교육과학기술부 ‘교육기관 신종플루 대응백서).
우리는 초딩 때 학교에서 역사를 제대로 못 배웠다. 우리에겐 6학년 때 역사 교육이 시작되는 '7차 교육과정'이 적용됐다. 그런데 6학년이 되니까 5학년 때 역사를 배우는 '2007 개정 교육과정'으로 바뀌었다.
중학교 3학년 때인 2014년 4월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다.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5월 예정된 제주도 수학여행을 목이 빠지라 기다렸건만, 나의 첫 수학여행은 사라졌다. 그때 '99년생은 왜 이럴까'하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불길하다는 미신이 있는 아홉수(9)가 두개나 겹쳐서일까. 이런 한심한 생각도 했던 것 같다.
2015년, 고등학교 1학년 때는 메르스(MERS)가 유행했다. 그해 5월 20일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환자는 186명까지 급증했고, 36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5월 소풍이 취소되는 건 이젠 뉴스도 아니었다. 내 멘탈이 그동안 점점 강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고통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 휴~.
2017년 드디어 고등학교 3학년이 됐다. 하필 내가 고3일 때 사상 최장기 추석 황금연휴가 왔다. 시골 할머니 댁도 못 가고 꼼짝없이 독서실에 나갔다. '진짜 한 달만 참으면 된다. 수능만 끝나봐라'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눈 깜짝할 사이 11월이다. 이틀 전 점심시간, 친구 하나는 밥을 먹다가 "아, 수능 1주일만 연기되면 다 1등급 찍을 각인데"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 자리에 있던 모두가 "응, 아니야~"라며 비웃었다.
"초딩, 중딩 때 수학여행 한 번도 못 가고, 수능까지 연기되냐. 99년에 태어난 게 무슨 죄냐 진짜." 단체 메시지 방에 친구들의 하소연이 쏟아졌다.
다시 수능 D-7이다. 학교 뒤 쓰레기장으로 책 버리러 가지 않은 게 '신의 한 수'가 됐다. 뉴스를 보자마자 학교로 뛰어가 버린 책을 찾으러 간 친구도 여럿이다.
친구들이 단체 메시지 방에 올리는 토끼띠 운세다. 1999년생 토끼띠, 나는 대한민국 고3이다. 저주받았다고 말하고 싶진 않다. 다음주 수능에 부정탈까봐.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올라온 글 등을 1999년생 고3학생의 독백 형식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