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오후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곡동 고려인마을에서 만난 김례나(가명·22·여)씨는 연신 눈물을 쏟아냈다. 2년 전 세 살짜리 딸과 함께 한국에 들어온 후 우즈베키스탄으로 출국과 재입국을 반복하면서 겪었던 고통이 떠올라서다.
우즈베크 출신 등 4000명 광주 정착
성인은 장기비자 막혀 출입국 반복
3세까지 재외동포 인정, 혜택 못 받아
최근 한시 조치 내놨지만 빈틈 여전
비자·취업사기, 임금체불 피해 속출
조부나 증조부의 고향을 찾아 국내에 들어온 고려인들은 모여 사는 경우가 많다. 낯선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하거나 아이를 교육하기 위해서는 공동체의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광주광역시에 있는 고려인마을은 국내의 대표적 ‘고려인 커뮤니티’다. 현재 한국에 있는 고려인 4만여 명 중 4000여 명이 광산구 월곡·산정·우산동 일대에 산다. 경기도 안산(1만여 명)에 이어 둘째로 큰 고려인 집결지다.
이곳에선 ‘고려인마을 종합지원센터’를 중심으로 어린이집과 다문화학교인 ‘새날학교’, 쉼터 등이 고려인의 한국 생활을 돕고 있다. 하지만 고려인 4세의 경우 성인이 되면 태어난 나라로 나갔다가 입국해야 하는 등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문재인 정부는 지난 9월 13일부터 2019년 6월까지 한시적으로 고려인 4세들이 국내에 체류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올해 8월 고려인 김알렉산드라(56·여)씨의 편지를 받은 청와대 측이 4세들에게 부모와 헤어지는 고통을 덜어준 것이다. 당시 고려인 3세인 김씨는 ‘문재인 대통령께 드리는 호소문’을 통해 ‘2016년 한국에 들어온 후 여섯 번이나 러시아로 출국했다 돌아온 딸의 이상한 여행을 멈춰 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정부의 이번 조치 역시 사각지대가 많다는 지적이다. 법무부 시행령에 ‘부모가 한국에 거주 중인 고려인 4세’로 규정돼 부모가 한국에 없을 경우엔 예전과 동일하다. 딸과 함께 사는 고려인 4세 김례나씨 역시 기존처럼 출입국을 반복해야 한다.
고려인들이 한국말에 서툰 것도 생활에서 겪는 큰 어려움 중 하나다. 대부분의 고려인이 의사소통을 제대로 못해 근무 여건이 열악한 공장이나 농촌에서 시간제로 일한다. 광주 고려인마을의 경우 성인 3500여 명 가운데 51%(1780여 명)가 제조업체에서 일하며, 45%(1600여 명)가 일용직이다. 이천영 새날학교 교장은 “국회에 계류 중인 ‘고려인 동포 합법적 체류 자격 취득 및 정착 지원을 위한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돼 안정적인 거주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고려인 4세를 겨냥한 비자 연장이나 취업 알선을 미끼로 한 사기, 임금 체불도 속출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자녀의 영주권을 취득해 주겠다”고 속여 리모(44·여)씨 등 고려인 3명에게 1430만원을 가로챈 김모(44)씨가 구속되기도 했다. 재외동포연구원 원장인 임채완 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언어 교육을 통해 고려인들이 양질의 일자리를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하고 4~5세에게도 장기체류가 가능한 재외동포비자나 영주권을 주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ckha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