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10대 난제에 도전하다 ④ 뇌의 비밀
리랩의 검은 쥐는 코를 킁킁거리며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이를 지켜보던 이진형 스탠퍼드대 바이오공학과 교수가 쥐와 전선으로 연결된 장치의 버튼을 눌렀다. 검은색 기계에서 파란 불빛이 흘러나오더니 갑자기 쥐가 시계 방향으로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다시 버튼을 조작하자 이번엔 쥐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춤을 췄다. 레이저로 뇌의 특정 부위(선조체·stratum)를 자극했을 뿐인데, 쥐를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한 것이다.
미국 5조5000억원, EU 1조대 투자
중국은 동물 실험 규제 완화로 추격
테슬라·페북도 뇌 관련 기술 개발 중
한국, 1998년 뇌연구촉진법 만들어
출발은 빨랐지만 규제에 막혀 부진
논문 4년간 1만 건, 기술이전 18건뿐
김경진 한국뇌연구원장은 “21세기는 뇌연구의 대항해시대”라며 “인간의 뇌를 제대로 이해한다면 수많은 난치병의 극복은 물론 과학기술의 혁명적 진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도 최근 수년 들어 빠른 속도로 선진국 뇌공학 기술을 흡수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규제에서 자유로운 연구환경 덕이다. 뇌공학이 발달한 미국·유럽 선진국은 동물 대상 실험 요건이 엄격하다. 이 때문에 이들 국가의 연구진은 중국 과학자와 공동연구 또는 중국 현지 실험 등으로 관문을 뚫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스위스연방공대는 척추마비 원숭이의 뇌·척추 신경계에 탐침을 꽂아 사상 최초로 원숭이가 스스로 다리를 움직이게 했다. 지난해 11월 세계 3대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한 이 연구의 저자 중 한 명은 중국의학연구소 소속이다. 지난해 이탈리아 연구진이 원숭이 머리를 잘라 다른 원숭이의 몸체에 이식한 적이 있는데, 이 실험 역시 중국 하얼빈대에서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 연구진은 선진국의 고급 뇌공학 기술을 습득하고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국 뇌 연구는 선진국에 뒤져 있다. 미국·유럽 기업이 뇌 공학기기·치료제 시장을 거의 독식하는 동안 한국은 파급효과가 큰 제품을 전혀 내놓지 못했다. 일부에서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부르는 배경이다. 한국 연구진은 최근 4년 동안 1만 개에 가까운 논문(9236건)을 쏟아냈다. 하지만 기술이전까지 발전한 논문은 불과 18건에 불과하다.
정부의 규제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신찬영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뇌 관련 임상시험은 여전히 정부와 산업계·학계의 컨센서스가 부족하다”며 “한국 뇌 연구가 발전하려면 규제 현실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물론 당장 십수 년 이내에 이들이 목표를 달성하긴 어렵다는 게 국내외 저명한 뇌공학자들의 일관된 평가다. 냉정한 평가의 배경은 ‘뇌’다. 인류는 여전히 뇌의 어떤 부위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어떤 전기 신호가 어디에서 발생했다는 정도만 겨우 인지하는 수준이다. 또 이를 인지한다고 해도 뇌에 전기 신호를 전달하기까지는 더 많은 기술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비전’이란 측면에서 뉴럴링크·페이스북의 아이디어가 ‘가치 있다’고 평가했다. 당장은 불가능해도 기술이 꾸준히 발전한다면 언젠가 인류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의미다.
최영식 한국뇌연구원 뇌질환연구부장은 “머스크가 전기차를 대량생산한다고 했을 때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현실이 됐다”며 “IT 대기업이 30년 이상 전적으로 연구에 매진해 급진적 성과를 얻는다면 이들의 아이디어는 현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미국) =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