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남주의 단편은 마지막 문장이 도발적이다. 모든 면에서 우월한(것처럼 보이는) 남자친구가 하자는 대로 10년 동안 꼭두각시 삶을 살았던 여성이 남자친구의 청혼을 거절하는 내용인데, '강현남, 이 XXX아'라는 욕설로 끝맺는다. 조씨는 13일 기자간담회에서 "마지막 문장을 미리 염두에 두고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소설집 제목은 조씨 소설의 제목에서 따왔다.
간담회에는 김이설·최정화씨도 함께 했다. 세 여성 작가의 '페미니즘 토크'를 정리했다.
-각자 작품 소개를 한다면.
『82년생 김지영』의 조남주, 『위저드 베이커리』 구병모 등
여성작가 7명 수위 높은 페미니즘 소설집 『현남 오빠에게』 출간
"르포 아니기 때문에 소설적 문장 쓰려 고민했다"
▶조남주(이하 조)='현남 오빠에게'는 남자친구의 청혼을 거절하는 여성의 편지글 형식이다. 의식적이든 무의적이든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삶을 교정하려 하고, 그에 의해 교정 당하는 관계는 꼭 남녀 사이에서 벌어지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남성이 가해자인 경우가 많다. '가스라이팅(gaslighting)'이라는 심리학 용어에 해당하는 상황인데, 상황 조작을 통해 상대의 자아를 흔들어서 자신의 영향력을 증폭시키는 현상을 뜻한다. 그런 현실을 소설에 그렸다.
▶최정화(이하 최)='모든 것을 제자리에'는 여성 소설가로서 페미니즘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모순과 괴로움에 시달리는 내 모습이 담긴 작품이다. 이렇게 뜨거운 화두를 다룬 소설집에 참가한 건 처음이다. 설레면서도 마음이 무거웠다.
▶최=처음 참여 제안을 받았을 때는 기뻐서 하겠다고 답했지만 실제로 작품을 쓰다 보니 부담이 컸다. 소설을 쓰면 대개 작가가 드러나기 마련인데, 내 안의 여성을 억압하는 생각, 여성 혐오가 드러나지 않을까 두려웠다. 여성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발언을 할 수도 있었겠지만 결국 지금 내 모습, 여성들의 모습이 이렇지 않을까, 질문하는 형태가 됐다. 여성들이 자신을 좀 더 냉철하게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면 좋겠다.
▶조=방송사 작가 시절 가정폭력 피해 여성을 취재한 적이 있다. 중학생 딸을 둔 분이었는데 사회적으로도 일정한 위치에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었는데도 결혼 초기부터 딸과 함께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경우였다. 나는 당시 23살이었다. 그런 피해자는 왜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하는 의문을 오래 품게 됐다. 피해 상황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인지하더라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지 않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다.
▶김=초등학교 6학년과 3학년, 두 딸을 키우면서 페미니즘 교육에 대한 고민이 많던 차에 소설 청탁을 받았다. 아래 세대에게 어떤 얘기를 해줘야 하나, 함께 읽어야 할 책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며 소설을 썼다. 선동하는 전사의 역할을 한 게 아니고, 같이 손잡고 있다, 당신만 겪는 게 아니라 우리도 겪는다, 그런 목소리를 낸 거다. 누군가에게는 불편,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말하지 않으면 전달되지 않으니…. 한국 여성들이 어떤 일들을 겪는지 귀 기울여 주십시오, 하는 의미다.
-소설집에 실린 다른 작가 작품은 어땠나.
▶김=최정화 작가의 작품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내 소설이 내 눈에 비친 세상, 일상에서 벌어진 일에 국한됐다면 최정화 작가의 작품은 이야기를 이렇게 확장할 수도 있겠구나, 그럼 이건 여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7편 모두 각자의 색깔이 잘 드러나 풍성한 문학작품을 향유하는 즐거움을 느꼈다.
▶조=출판사에서 주제나 소재를 조율하지 않았는데도 7편의 소재나 스타일이 너무 달라 독자로서 재미있고 흥미로웠다. 김이설 작가의 작품은, 남자아이와 여자아이를 다르게 대하는 사회적 편견에 관한 지금 내 고민과 비슷해 굉장히 몰입해 읽었다. 최정화 작가의 작품은 내가 나도 모르게 갖게 된 남성 위주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본다는 점을 의식할 때 느끼는 두려움, 페미니즘을 말하는 나는 모든 면에서 좀 더 완벽해져야 한다는 부담감, 이런 고민이 내 고민과 내용이 같아 크게 동의하며 읽었다.
▶최=김이설·조남주 두 작가의 소설은 현실 세계를 카메라로 담듯 리얼하게 그려 공감이 컸다. 소설 속 현실은 부조리극처럼 느껴진다. '현남 오빠에게'의 화자가 10년간 남자친구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점은 미스터리고 부조리인데, 돌이켜 보면 그게 나 자신의 모습이어서 스스로 이상하고 낯설게 느껴졌다. '경년'은 명절 때 뵙는 아버지, 어머니의 고민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이해하지 못했던 어머니의 삶을 다시 보게 됐다.
▶김=쓰는 내내 고민했다. 르포가 아니라 소설이기 때문에 문장 하나라도 소설적 문장을 구사하려고 했다. 페미니즘 소설이지만 그래도 소설에 방점을 찍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독자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있다. 어쩌면 이런 주제로 소설 써주십시오, 하는 것 자체가 문학 본령과는 거리가 있는 거 아닌가. 하지만 페미니즘 문제가 북핵에 맞먹는 심각한 문제다 보니….
▶조=처음부터 하고 싶은 얘기 전달과 문학적 완성도, 둘 다 챙기지는 못하리라는 주제 파악이 있었다. 결국 얘기 전달에 비중을 두기로 했다. 촌스러운 얘기가 되겠지만 자신 있게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최=다른 작품을 쓸 때보다 오히려 만족도가 높았다. 주제가 강하게 부각되는 소설을 쓸 때 오히려 작품 완성도가 높아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다. 문학은 특별한 게 아니라 결국 발언의 한 형태다. 앞으로 주제가 잘 전달되는 탄탄한 작품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독자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길 바라나.
▶최=내 소설집 나왔을 때보다 이번 소설집이 많이 읽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크다.
▶조=작품 마감 시간은 다가오고,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표지에 인쇄된 책에 달릴 악플과 비판을 생각하니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그런 불편함을 감수하고 밤새 마음 졸이며 소설을 쓰고 있을 여섯 명의 작가를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했다. 나 혼자 이러는 게 아니라 흔들리는 배에 올라탄 다른 작가들도 어디선가 잠못 이루고 있겠구나. 전부 처음 보는 분들인데, 이번 소설집을 통해 좋은 작가들을 만난 것 같아 뜻깊다.
▶김=소설집이 페미니즘이라는 이름으로 묶였지만 남자들과 싸우자는 의미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좋겠다.
-여성 문제를 해결하는 현실적인 방책이 있을까.
▶김=남편이, 내 소설을 읽고 있으면 자신이 나쁜 남자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소외감을 느낀다고 하더라. 실은 나 자신도 과연 페미니즘적 인간인가 고민이 많다. 여성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건 작가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다수의 목소리에서 정답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조=교육 정책이나 성폭력 문제를 관련 분야 전문가가 맡아야 하듯 작가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글쓰기다. 여성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는 소설을 쓰는 것까지가 내 역할이다.
▶최=페미니즘 교육이 시급하다. 여성조차 스스로가 처한 불평등 상황에서 어떻게 벗어나야 하는지 모르는 실정이다. 현재의 가족제도나 사회제도 아닌 대안적 삶, 그 삶이 가능한 사회적 조건 또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