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기획] 인류 10대 난제에 도전하다 ④뇌의 비밀
선진국, 뇌공학 연구에 2013년부터 조 단위 투자
프랑스, 식물인간 15년 만에 팔·다리 움직이는데 성공
한국은 아젠다 선점 노렸지만 선진국에 뒤져
1만개 가까운 논문만 쏟아내고 산업화는 실패
김경진 한국뇌연구원장은 “뇌 연구의 대항해시대”라고 비유했다.
중국은 최근 수년 들어 빠른 속도로 선진국 뇌 공학 기술을 흡수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규제에서 자유로운 연구환경 덕이다. 뇌공학이 발달한 미국ㆍ유럽 선진국은 동물 대상 실험 요건이 엄격하다. 때문에 이들 국가의 연구진들은 중국 과학자와 공동연구 또는 중국 현지 실험 등으로 관문을 뚫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스위스연방공대는 척추마비 원숭이의 뇌ㆍ척추 신경계에 탐침을 꼽아 사상 최초로 원숭이가 스스로 다리를 움직이게 했다. 지난해 11월 세계 3대 학술지 네이처에 게재한 이 연구의 저자 중 한 명은 중국의학연구소 소속이다. 지난해 이탈리아 연구진이 원숭이 머리를 잘라 다른 원숭이의 몸체에 이식한 적이 있는데, 이 실험 역시 중국 하얼빈대에서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중국 연구진은 선진국 고급 뇌공학 기술을 습득하고 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한국 뇌 연구는 선진국에 뒤져있다. 미국ㆍ유럽 기업이 뇌 공학기기ㆍ치료제 시장을 거의 독식하는 동안 한국은 파급효과가 큰 제품을 전혀 내놓지 못했다. 일부에서 ‘잃어버린 20년’이라고 부르는 배경이다. 한국 연구진은 최근 4년 동안 1만 개에 가까운 논문(9236건)을 쏟아냈다. 하지만 기술이전까지 발전한 논문은 불과 18건에 불과하다.
정부 뇌연구촉진계획에 참여하고 있는 신찬영 건국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연구비 투자 1억원당 기술이전 수 등 산업화 지표를 보면, 다른 생명공학 분야와 비교해도 뇌 과학은 선진국보다 특히 뒤떨어져 있다”며 “연구 성과가 산업화와 연계가 잘 안 된다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정부 규제도 영향을 미쳤다. 신 교수는 “뇌 관련 임상실험은 여전히 정부와 산업계 학계의 컨센서스가 부족하다”며 “한국 뇌 연구가 발전하려면 규제 현실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뇌연구와 기술개발이 지지부진한 사이 서구 서진국의 뇌 연구는 이미 상업화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뉴트로테크 리포트’에 따르면, 2014년 기준 뇌공학 산업 규모는 102억 달러(11조5000억원)에 달한다. 뇌에 전극을 삽입해 뇌를 자극해 질환이나 질병을 치료하는 시장은 메드트로닉스ㆍ사이버로닉스 등 미국 4개 기업이 세계 시장을 100% 독점하고 있다.
올 초에는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이 뉴럴링크라는 바이오의학 연구기업을 설립했다. 뉴럴링크는 뇌에 전자그물망을 주입해 뇌의 신경세포에 전기 자극을 주거나 전기 신호를 읽어내는 게 목표다. 뇌공학과 컴퓨터를 결합해 인공지능(AI) 시대를 열겠다는 야심이다. 지난 4월 페이스북 연례 개발자회의(F8)에서 레지나 듀건 페이스북 수석부사장은 “인간의 뇌와 컴퓨터를 연결하는 두뇌컴퓨팅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선언했다. 뉴럴링크처럼 뇌에 기계를 심지 않고도, 피부에서 뇌로 직접 자극을 전달해서 의사소통할 수 있는 기술을 선보이겠다는 생각이다.
물론 당장 십수 년 이내에 이들이 목표를 달성하긴 어렵다는 게 국내ㆍ외 저명한 뇌공학자들의 일관된 평가다. 냉정한 평가의 배경은 ‘뇌’다. 인류는 여전히 뇌의 어떤 부위가 어떻게 작용하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단지 어떤 전기 신호가 어디에서 발생했다는 정도만 겨우 인지하는 수준이다. 또 이를 인지한다고 해도, 뇌에 전기 신호를 전달하기까지는 더 많은 기술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가들은 ‘비전’이란 측면에서 뉴럴링크ㆍ페이스북의 아이디어가 ‘가치 있다’고 평가했다. 당장은 불가능해도, 기술이 꾸준히 발전한다면 언젠가 인류의 미래를 바꿀 수 있다는 의미다.
최영식 한국뇌연구원 뇌질환연구부장은 “머스크가 전기차를 대량생산한다고 했을 때 아무도 믿지 않았지만 현실이 됐다”며 “IT 대기업이 30년 이상 전적으로 연구에 매진해 급진적 성과를 얻는다면, 이들의 아이디어는 현실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샌프란시스코(미국) =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