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도 마켓이 있다!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의 다큐멘터리 마켓

중앙일보

입력 2017.11.08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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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스트 코리안 프로젝트를 수상한 '벗어날 수 없는 산' 문창용 감독의 피칭 현장. 사진=인천다큐멘터리포트 (이재성)

 [매거진M] 새로운 다큐멘터리를 미리 만나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국내 유일의 다큐멘터리 전문 마켓, 인천다큐멘터리포트(이하 인천다큐포트)다. 관객을 위한 상영이 아닌 다큐 프로젝트를 소개하기 위한 ‘피칭(Pitching)’이 중심인 행사. 올해 11개국 총 31편의 다큐 프로젝트가 영화 및 방송 관계자로 구성된 디시전 메이커(Decision-marker, 의사 결정자) 앞에서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4회째를 맞은 인천다큐포트는 제작에서 배급까지 모든 단계의 비즈니스를 지원하고, 다큐 산업 전문가들과 네트워크를 제안하며 실질적이고 효율적인 마켓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11월 2일부터 5일까지 나흘간 각국에서 모인 다큐인들의 열정이 고스란히 전해졌던 현장의 열기를 전한다.

국내 유일의 다큐멘터리 전문 마켓
인천다큐멘터리포트 2017

 

“인천다큐포트는 제작비를 확보하고 비즈니스를 하는 자리지만, 나는 인천다큐포트가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신의 작품을 위해 노력하는 다큐 감독들에게 지속적으로 함께할 수 있는 파트너와 동료, 친구들을 만들어 주는 곳이 되길 바란다.” 

 
조지훈 프로그래머의 말이다. 인천다큐포트가 빠르게 아시아 다큐계의 구심점이 된 비결은 아마도 같은 마음으로 모인 이들의 네트워킹 덕분 아닐까.
 

한국 다큐의 해외 배급 성과 및 한계를 알아보는 비즈 토크 시간. (왼쪽부터) 에스더 반 메셀 대표 (퍼스트 핸드 필름), 카트린 르 클레프 대표 (캣앤독스), 모더레이터 진명현 대표 (무브먼트). 사진=인천다큐멘터리포트(이재성)

올해 인천다큐포트에는 20개국 140편의 프로젝트가 접수됐고, 세계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인 디시전 메이커들의 참석도 활발히 이뤄졌다. 또한 해외 관계자들의 참여도 꾸준히 느는 추세다. 특히 북유럽 대표 다큐 영화제인 노르디스크 파노라마는 이번에 인천을 찾아, 내년 영화제에 한국 특별 프로그램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인천다큐포트와 함께 한국 다큐 프로젝트를 북유럽에 소개하고, 공동 제작의 가능성을 타진하겠다는 것. 아시아의 참신한 다큐멘터리 기획을 발굴하고, 실질적인 비즈니스 미팅을 지원해주는 인천다큐포트의 유의미한 성과가 하나둘씩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올해 인천다큐포트는 행사 일정을 3일에서 4일로 늘리고, 자체 프로그램인 ‘비즈 토크’ 비중을 키웠다. 이번 비즈 토크에선 아시아 다큐가 발전하기 위한 방안 모색과 한국 다큐의 해외 배급 성과와 한계, 노르디스크 파노라마 소개, 그리고 성공적인 후반 작업을 위한 팁 등을 소개했다.


다채롭고 수준 높은 피칭

 

'소년병'

인천다큐포트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세 부분으로 나눠 피칭을 진행했다. 둘째 날인 3일은 한국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의 다큐 프로젝트가 발표되는 날. 9개국 10편의 프로젝트가 ‘아시아 다큐멘터리 피칭(A-Pitch)’ 무대에 올랐다. 
 
아시아 다큐 피칭은 사회적 문제부터 가벼운 소재까지 다양한 이슈로 가득했다. 미얀마와 태국 국경에서 난민 신분으로 살아가는 소년의 이야기를 그린 ‘소년병’(논타왓 눔벤차폴 감독)과 납치된 후 성매매 시장에서 거래되는 인도 소녀의 비밀을 파헤치는 ‘미씽’(미리암 챤디 메나체리 감독)은 디시전 메이커들에게 “사회적 이슈를 섬세하게 다뤘다”고 평가받았다. 
 
또한 첫 장편영화 ‘복숭아 꽃 피는 곳’ 피칭에 나선 지앙 춘화 감독은 남녀가 엄격하게 격리된 교화 학교에서 벌어지는 첫사랑 이야기를 선보이며 부산국제영화제 김영우 프로그래머로부터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가는 연출이 따뜻하고 유쾌해 인상적”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석탄 광부들이 갇혀 일만 했던 오키나와의 이리오모테섬에 사는 92세 하시마 할머니를 다룬 ‘푸른 감옥’(후앙 은유 감독)은 미국 POV로부터 “역사적으로 의미가 있는 이야기”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시네마달 김일권 대표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명확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베테랑 감독들의 무게감 돋보인 피칭

 

인천다큐멘터리포트 2017 사진=인천다큐멘터리포트(이재성)

인천다큐포트 셋째 날 열린 ‘한국 다큐멘터리 피칭(K-Pitch)’은 한국 다큐의 현재를 확인하고 미래를 가늠해보는 시간이었다. 그동안 인천다큐포트를 통해 소개되었던 ‘리틀 걸 블루’(현진식 감독) ‘다시 태어나도 우리’(9월 27일 개봉, 문창용·전진 감독) 등 한국 다큐 프로젝트들이 국내외에서 좋은 성과를 내고 있는 상황. 그래서인지 현장의 분위기는 금세 뜨겁게 가열됐다. 시간 지연을 이유로 “코멘트나 질문을 짧게 하고, 비즈니스 미팅 때 자세한 이야기를 나눠라”는 사회자의 요청이 몇 번이나 반복될 정도였다.
 

비즈니스 미팅 중인 정재은 감독의 ‘고양이들의 아파트’ 프로젝트팀. 사진=인천다큐멘터리포트(이재성)

한국 다큐 피칭에선 환경·여성·동물·사회·역사 등 다양한 주제가 선정됐다. 특히 다큐 분야에서 자신만의 영역을 확고히 한 베테랑 감독들의 신작 프로젝트가 눈길을 끌었다. 먼저 전작 ‘잡식가족의 딜레마’(2015)에서 한국 양돈 현실을 꼬집은 황윤 감독은 제주도 바다에서 불법 포획하게 된 돌고래들을 다시 바다로 돌려보내는 과정을 담은 ‘36.5’를 선보였다. ‘고양이를 부탁해’(2001) ‘말하는 건축가’(2012) 등을 연출한 정재은 감독의 신작은 아파트 단지에서 평화롭게 살던 고양이들에게 닥친 재건축 철거 이야기 ‘고양이들의 아파트’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외침을 담은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2009) ‘다이빙벨’(2014)을 연출한 안해룡 감독은 지금껏 존재가 거의 알려지지 않은 북한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여성들을 이야기하는 ‘분노-우리는 침묵하지 않는다’(이하 ‘분노’)를 소개했다. KBS 임기순 프로듀서는 ‘분노’에 대해 “우리가 미처 몰랐던 북한의 위안부 할머니들을 찾아 나서는 방식이 흥미롭다”고 호평했다.
 
세월호 참사를 다룬 프로젝트들은 디시전 메이커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세월호 사고로 막내딸을 잃은 엄마 이야기 ‘다시 오늘’(김동빈 감독)과 세월호를 수색했던 민간 잠수사들의 현재 모습을 다룬 ‘로그북’(복진오 감독)은 “우리가 잊지 않고 해야 하는 이야기”라는 평가를 받았다.
 

인천다큐멘터리포트 2017 사진=인천다큐멘터리포트(이재성)

페미니스트를 선언한 이들이 모여 만든 여성해방운동 단체를 그린 ‘불꽃페미액션’(윤가현 감독)과 미국으로 입양돼 한국말을 못 하는 아들과 시한부가 된 엄마가 40년 만에 만나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 ‘엄마와 나’(연왕모 감독), 장애를 가진 무형문화재가 아들과 함께 인생의 마지막 대북을 만드는 ‘울림의 탄생’(이정준 감독). 이 세 프로젝트는 그야말로 웃픈 이야기다. 캣앤독스의 카트린 르 클레프 대표는 “독특한 발상과 유쾌함이 돋보인다”고 평했다. 
 
14대 서울시장 김현옥을 파헤치며 대한민국 근현대사를 이야기하는 ‘부르도자는 고독하다’는 “해외 협업이 가능한 이야기”(POV)라는 평과 “이야기를 정돈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EBS)이라는 조언을 함께 받았다. 인도네시아 쓰레기 마을에서 플라스틱을 주워 생활하는 아이들의 여정을 보여주는 ‘벗어날 수 없는 산’은 디시전 메이커들로부터 “강렬한 주제, 호소력 있는 이야기”라는 호응을 얻었다.
 
올해 인천다큐포트에서 진행된 비즈니스 미팅은 지난해 239건보다 무려 127건이 늘어난 366건으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5일 진행된 폐막식에선 현물지원을 포함한 24개 부문 수상작을 발표했고, 총 37편의 프로젝트가 수상의 기쁨을 안았다.
 

'피의 연대기' 사진=서울국제여성영화제

'다시 태어나도 우리'

인천다큐포트의 특징은 ‘다시 태어나도 우리’ ‘피의 연대기’(김보람 감독)처럼 다큐 피칭에 참여했던 프로젝트를 1~2년 후 다시 러프컷 세일(다큐 후반 작업 및 완성 단계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프로그램)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 이는 인천다큐포트가 실질적인 마켓으로서 확실히 자리잡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이번 인천다큐포트는 그 사실을 더욱 명징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자리였다.
 
주요 수상 결과  

‘벗어날 수 없는 산’

부문 | 상금 | 영화(감독 | 프로듀서) 
 
베스트 코리안 프로젝트 | 3000만원
벗어날 수 없는 산(문창용 | 문창용)
 
베스트 아시안 프로젝트 | 각1500만원
불이 들어오면(아누파마 스리니바산·아니르반 두타 | 아니르반 두타)
소년병(논타왓 눔벤차폴 | 존 바달루·캄타치 나파타룽)
 
베스트 러프컷 프로젝트 | 2000만원
피의 연대기(김보람 | 오희정)
 
다큐 스피릿 어워드 | 각 1000만원
다시 오늘(김동빈 | 김동빈)
땅 밑에 우는 미래(항 팜 뚜 | 주얼 마라난)
 
베스트 신인 프로젝트 | 1000만원
불꽃페미액션(윤가현 | 마민지)
 
CGV아트하우스상 | 2000만원
카운터스(이일하)
 
대명컬처웨이브상 | 500만원
엄마와 나(연왕모 | 연왕모) 
 
 
이지영 기자 lee.jiyoung2@joongang.co.kr 사진=인천다큐멘터리포트(이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