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일 LG전자 경남 ‘창원연구개발(R&D)센터’ 14층 요리개발실. 이 회사 이고은 선임연구원이 이같이 말한 다음, 최근 미국에 출시한 ‘프로베이크 컨벡션(ProBake Convection)’ 오븐에서 구워낸 스테이크 한 덩이를 잘게 잘라 보여줬다. 고기의 겉과 속이 알맞게 익어 있었다. 한입 베어 물자 레스토랑에서 먹을 때처럼 부드럽고 진한 식감이 느껴졌다.
비결은 ‘수비드(sous-vide)’라는 프랑스풍 저온조리법. 일반 스테이크 조리법에선 섭씨 200~300도로 바짝 굽지만 수비드 조리법에선 55도로 장시간 조리한다. 밀폐된 비닐봉지에 음식물을 담아 미지근한 물 속에서 오래 익힌다. 그러면 겉과 속이 고르게 가열돼 본연의 맛과 향이 유지된다. 이 연구원은 “각종 조리기기가 완비된 요리 개발실에서 R&D 인력들이 직접 요리를 만들어보면서 신제품에 탑재되는 레시피(조리법) 개발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LG전자 창원R&D센터 가보니
물맛 소믈리에 등 연구인력 1500명
지하 층엔 750개 오븐·냉장고 꽉 차
시제품 만드는 대형 3D프린터도 4대
“1250억 달러 세계시장 공략할 기지”
조리법 연구가 중요한 이유는 단지 국내 소비자들의 까다로워진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서만이 아니다. 해외 수많은 소비자의 다양한 입맛에 맞는 조리를 해주는 제품을 만들어야 수출에도 그만큼 탄력을 받을 수 있어서다. LG전자 주방가전은 세계 170개국에서 판매될 만큼 인기인데 선봉장인 오븐의 경우 중동 지역 수출용 제품엔 케밥 조리법을, 인도 지역 수출용 제품엔 카레 조리법을 탑재하는 식으로 ‘현지화’한 것이 주효했다.
LG전자는 R&D 인력의 전문성 강화에도 나서고 있다. 연구원 개개인의 역량이 소비자 혜택으로 직결된다는 판단에서다. 이병기 선임연구원은 한국에 100여 명만 있다는 ‘워터 소믈리에’다. 일반 소믈리에가 와인 맛을 감별하듯 눈 감고도 물맛을 가려낸다. 그는 “2013년 한국수자원공사에서 운영하는 워터 소믈리에 교육 과정을 이수하고 자격증을 취득했다”며 “정수기 개발 과정에서 물맛에 이상이 없는지, 어떻게 해야 더 물맛이 좋은 정수기를 만들 수 있을지 연구한다”고 했다. 이 밖에 김치만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김치 연구가’ 등 약 1500명의 R&D 인력이 근무 중이다.
송대현 LG전자 H&A사업본부장(사장)은 “창원R&D센터는 연간 1250억 달러 규모의 세계 주방가전 시장을 공략하는 전진 기지이자 LG전자 모든 주방가전의 산실”이라며 “창원공장도 2023년까지 스마트팩토리로 탈바꿈해 시너지를 도모하고 생산성을 극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창원=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