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는 각국 정부나 중앙은행이 발행하는 일반 화폐와 달리 일정한 규칙에 따라 가치가 매겨지는 전자화폐의 일종이다. 인터넷상으로만 거래되는 비트코인이 대표적이다.
일감 떨어진 건설업체 문 닫고
비트코인 투자대행업체 1억 투자
지인 100여명, 수십억 끌어들여
부인이 "다단계사기"라고 말리자
고교생 자녀 둔 채 7월 집 나가
경찰 수사로 업체 사기 행각 드러나
업체 대표 구속, 5명 불구속 입건
부인 "피해자들이 손해배상 청구할지 무섭다"
속칭 '지점장'이라 불리는 사람은 "달러화 등 기존 화폐의 시대는 갔다. 비트코인의 시대가 왔다. 2009년 비트코인 하나 가격이 1센트에서 현재 7000달러로 올랐다. 비트코인 값은 계속 오를 거다. 세계적인 투자회사들도 비트코인에 투자한다"며 유혹했다.
가뜩이나 지난 겨울부터 회사에 일감이 준 터에 김씨는 일단 1300만원을 투자해 계좌 10개를 만들었다. 실제 몇 달 만에 업체 설명대로 수익이 생기고 투자자 모집 수당도 받자 김씨는 부인 몰래 1억원을 지인들에게 빌려 해당 업체에 맡겼다.
김씨는 아예 지난 5월 본인 회사 문을 닫고 비트코인 투자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닥치는 대로 주변 사람들을 '하위 투자자'로 끌어들였다. 업계 사람들부터 경영대학원 선·후배, 취미 모임 회원 등 만나는 사람마다 비트코인에 투자할 것을 권유했다.
김씨는 "남편은 투자 설명회에 사람들을 데려가는 것까지 책임지고 이후엔 '지점장'이 붙는 식이었다"며 "남편이 이런 식으로 끌어들인 투자자가 100여 명, 투자금만 수십억원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인 김씨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불법 다단계를 왜 하느냐"고 남편을 뜯어말렸다고 한다. 비트코인 전문가 등 여러 루트를 통해 남편이 투자금을 맡긴 회사가 사기를 치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하지만 남편 김씨는 외려 "이렇게 쉽게, 많은 돈을 벌게 해주는 좋은 회사가 어디 있느냐"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부부싸움은 잦아졌고, 급기야 남편 김씨는 석 달 전 집을 나가 연락을 끊었다.
장씨 등은 서울과 전주 등 전국에 60개 지점을 개설해 비트코인 투자를 미끼로 지난 2015년 9월부터 최근까지 3916명으로부터 387억원을 받아 챙긴 혐의다. 피해자들은 김씨처럼 가상화폐의 개념을 정확히 모른 채 투자한 중·장년층이 많았다.
김씨는 "남편이 투자금을 잃은 것보다 그 사람이 끌어들인 투자자들이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하거나 집에 찾아와 행패를 부리지 않을까 더 겁난다"며 "남편과는 이혼하겠다"고 말했다.
경찰 조사 결과 장씨 업체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이른바 '페이퍼 컴퍼니'였다. 투자자들에게는 "비트코인을 채굴한다"고 홍보했지만 정작 장씨 등은 그 업체가 어디 있는지조차 몰랐다고 한다. 파나마에 있다는 본사도 실체가 불투명했다.
경찰은 장씨 등이 전국 60개 지점에서 투자자를 모은 점에 비춰 추가 피해자가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노승섭 익산경찰서 지능팀 경위는 "수익모델이 없는데도 높은 수익과 원금을 보장한다며 투자자를 모으는 경우는 불법 다단계 사기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익산=김준희 기자 kim.junh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