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두 맹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간의 갈등이 급격히 악화하고 있다. 이슬람국가(IS) 몰락 이후 인접 국가에 대한 주도권 싸움이 군사적 긴장으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지난 3일 밤부터 사우디 안팎에서 흘러나온 긴급 뉴스들은 '수니와 시아의 분열이라는 중동의 큰 게임'(월스트리트저널)의 틀에서 이해될 수 있다.
◆사우디 "미사일 배후는 이란"=6일(현지시간) 사우디의 아델 알주바이르 외무장관은 CNN에 지난 4일 밤 리야드 인근에서 격추된 미사일의 배후로 이란을 공개 지목하고 나섰다. 알주바이르 장관은 문제의 미사일이 “예멘의 후티 반군이 장악한 영토에서 헤즈볼라가 발사한 이란 미사일이었다”면서 “이것은 전쟁 행위”라고 주장했다.
사우디 "리야드 겨냥 미사일 배후는 이란"
유엔 51조 '자위권' 거론하며 강경 대응 위협
친사우디 하리리 총리의 전격 사임 발표 맞물려
사우디의 대레바논 헤즈볼라 공세 강화될 듯
이란 핵협정 파기 주장하는 트럼프와 밀월
사우디 무함마드 왕세자의 패권 의지 주목
사우디의 초기 대응은 후티 반군의 배후 세력으로 지목되는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향했다. 6일에도 타메르 알사반 사우디아라비아 걸프담당 장관은 레바논에 대해 “사우디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 정부로서 다뤄지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날 알주바이르 장관이 미국 매체를 통해 이란을 진짜 배후로 지목하면서 긴장이 한층 고조되는 분위기다. 알주바이르 장관은 자위권을 국가의 '고유 권리'로 인정하는 유엔 헌장 51조를 인용하면서 “우리는 적절한 기회에 적절한 방식으로 대응할 권리가 있다”고도 했다. 단 적절한 방식이 무엇인지, 군사적 대응을 의미하는 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적국에서 사임을 발표한 총리에 대해 헤즈볼라의 하산 나스랄라 사무총장은 5일 "사우디가 지시하고 강제로 시킨 것"이라며 음모론을 제기했다. 사우디가 하리리를 감금하고 있다는 억측도 돌았다. 하지만 6일 사우디 언론은 하리리 총리가 평소와 다름 없는 모습으로 살만 국왕을 만나는 모습을 전함으로써 ‘인질 루머’를 잠재웠다.
사우디-레바논 이중국적자인 하리리는 같은 수니파인 사우디로부터 정치적 지원을 받아 지난해 11월 두번째로 총리직에 취임했다. 그는 헤즈볼라와 기독교의 지지를 받는 미셸 아운 대통령과 권력을 나눠 가진 채 레바논 내 종파 분쟁을 조정해왔다.
하리리의 사임 배경이 무엇이든 사우디는 '레바논=헤즈볼라'라는 공식으로 압박을 더해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사우디-이란 양측의 대리전 양상이 된 예멘·시리아 사태에 이어 레바논이 또다른 각축장이 될 가능성도 있다. 한편 사우디 인접국가 바레인은 레바논 내에 거주하는 자국민들에게 "즉시 레바논을 떠날 것"을 명령하는 한편 레바논에 대한 여행 금지령도 내렸다.
각각 수니파와 시아파를 대표하는 두 맹주 사이에 충돌이 임박했다는 예상은 IS 패퇴 시점부터 불거졌다. IS가 자칭 ‘칼리프 국가’를 선포하고 지배해온 이라크·시리아 북부 일대는 이란 등 시아파에게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길목이다. 이란은 이곳의 친이란 시리아 정부군 및 레바논 헤즈볼라에게 무기 지원 및 수출을 하며 ‘시아파 벨트’ 복원을 노리고 있다.
반면 사우디는 이란의 역내 영향력 강화를 차단하는 한편 인접 국가들에 대한 주도권 회복에 힘쓰는 중이다. 시아파가 장악하고 있는 인접 이라크와는 지난달 27년 만에 처음으로 직항 노선을 개설했다. 지난 6월엔 예멘 내전 개입과 친이란 태도 등을 이유로 걸프국가인 카타르에 대한 아랍권 6개국의 단교를 주도하기도 했다.
사우디의 공세에 이란은 정면 대응을 자제하면서도 외교 항변을 이어갔다. 이란은 6일 외무부 대변인 명의로 낸 성명에서 사우디의 ‘미사일 관련 주장’이 "파괴적이고 무책임하며 도발적인 허위 사실 유포"라면서 "이제 그만 비방전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이란은 앞서 4일엔 테헤란의 옛 주이란 미대사관 앞에 사거리 2000㎞에 이르는 가드르 미사일을 전시한 채 항미 시위를 벌였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