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인과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월레 소잉카 특별 대담
제1회 아시아문학페스티벌에서 만나 문학의 현실과 미래 진단
소잉카 "북핵 위기, 작가들이 비판적 사고 갖고 계속 쓰는 수밖에 없다"
고은 "서구문학이 반드시 보편적인 것 아니다. 한국문학 특수성 살려야"
나이지리아 독재정권을 비판하다 궐석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는 소잉카는 대담에 앞서 '해돋이가 당신의 등불을 끄게 하라'라는 제목으로 기조강연을 했다. 문학이, 세상을 구획하고 경계선을 설정하고자 모든 종류의 권력에 강력한 안티테제(반대 주장) 역할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소잉카가 방금 경계선에 대한 얘기를 했는데, 사람과 생명계에서 경계라는 체제는 언제나 만들어진다. 무경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태양계의 화성이나 금성, 지구도 하나의 경계들이다. 그런 면에서 경계 넘기, 경계 벗어나기는 경계에 대한 반작용으로 성립하는 개념이다. 우리가 땅을 딛고 서 있는 것도 인력에 대한 반작용 아닌가. 인간은 경계를 넘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연다. 그러다 보면 또 경계가 만들어지고, 다시 경계를 넘는 행위가 이뤄진다. 이런 것이 세계 흐름의 지속성, 생동하는 지속성이라고 생각한다."
고은 시인의 이런 발언으로 대담은 뜨거워졌다. 경계를 단순한 억압으로 간주하지 않고, 작용과 반작용, 현실과 초월이라는 대립항의 한 축으로 상대화하면서 논의가 깊어졌다.
경계에 대한 논의는 보편성과 특수성에 대한 얘기로 옮아갔다. 한국문학 혹은 나이지리아 문학이라는 특수성은 기존의 세계문학이라는 경계선, 구획을 넘어 보편성으로 나아가기를 희망한다. 고은 시인은 이번에도 보편성과 특수성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고은=특수성과 보편성 둘 다 맹신해서는 안 된다. 서구 작가들이 한국에 와서 한국문학이 보편성에 가까워지면 좋겠다고 얘기하곤 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 보편성은 말하자면 어린아이다. 자라나서 특수성으로 성장한다. 그런 면에서 보편성은 있어야 하지만 시야가 풍요롭게 열려야 한다. 한국과 이란의 시가 보편성을 획득해, 동일하다면 이런 자리에서 우리가 만날 필요가 없다.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서로 연대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소잉카=동감이다. 보편성은 때로 허구적인 개념일 수 있다. 사람들의 생각을 한 방향으로 몰아치기 위한 조작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창작은 특수성에서 출발할 때, 창작자의 가장 가까운 곳, 진심에서 출발해 언어로 표출될 때 보편성을 얻게 된다. 우리가 가장 의미 있게 느끼는 것은 우리 삶과 상관관계가 있는 것들이다.
조급하게 서양 문학을 따라가려 하지 말고 우리 안의 보물을 바로 보자는 평범한 논의였지만 울림이 있었다. 대담은 1시간 넘게 진행됐다. 고은 시인은 "오늘 이 자리, 국제 시인축제에서 소잉카와 더불어 시를 확신합시다!"라며 시 예찬론을 펼쳐 중국·일본·몽골·이란 등 아시아와 미국·프랑스·스페인 등의 시인 참석자, 일반 청중의 박수갈채를 이끌어냈다. 두 사람은 서양 문학에 비해 아시아와 아프리카 문학이 싱싱한 잠재력을 품고 있다는 전망을 공유했다.
북핵 위기 같은 현실의 문제에 문학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마지막 질문에 소잉카는 "작가들이 비판적인 사고를 유지하며 계속해서 글을 쓰는 수밖에 없다", 고은 시인은 "험악한 상황에 처한 한국에서 열리는 문학행사에 참석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광주광역시=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