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나가던 바우씨의 친구는 50대 중반에 다니던 회사에서 물러났다. “세간에 ‘오륙도(56세까지 직장에 다니면 도둑)’라는 말이 유행하긴 했지만 설마 그게 내 얘기가 될 줄은 생각 못 했어! 국민연금 받으려면 아직 멀었는데, 10년 가까운 무소득 크레바스를 어떻게 뛰어넘지?”
크레바스(crevasse)란 빙하가 갈라져서 생긴 좁고 깊은 틈이다. 흔히 퇴직 이후부터 연금을 받기 전까지 발생하는 무소득 기간을 가리킨다. 말 그대로 인생에서 소득 흐름의 거대한 틈이 생긴 것이다.
최재식의 연금 해부하기(16)
노령연금 5년 먼저 받을 경우
정상연금 수령 나이 보다
12년 더 살면 조기연금 불리
소득공백기, '노전준비'로 대처
그런데 대개 직장인의 현실적 퇴직연령이 연금지급 개시연령보다 수년 또는 많게는 10년 정도까지 빠르다. 공무원의 경우 정년이 일반직 60세, 교육직 62세 등으로 규정돼 있지만 정년을 채울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정년 규정이 연금지급 개시연령에 맞춰 65세까지 연장될 가능성은 현재로선 없다. 국민연금 가입자는 일반적으로 공무원보다 퇴직연령이 훨씬 낮다. 따라서 일반 회사원의 경우 무소득 크레바스 기간이 공무원보다 훨씬 길다고 할 수 있다.
조기연금, 연 6%씩 감액
국민연금은 노령연금 개시연령 도달 5년 미만인 사람이 소득 있는 업무에 종사하지 않을 경우 조기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다. 조기노령연금은 1년당 6%씩 감액된다. 개시연령 미달연수 1년 이내 94%, 1~2년 이내 88%, 2~3년 이내 82%, 3~4년 이내 76%, 4~5년 이내는 70%를 받는다.
공무원연금의 조기퇴직연금도 개시연령 도달 5년 미만인 경우에 받을 수 있다. 다만 1년당 5%를 감액하는 것이 국민연금과 다르다. 개시연령 미달연수 1년 이내 95%, 1~2년 이내 90%, 2~3년 이내 85%, 3~4년 이내 80%, 4~5년 이내는 75%를 받는다.
조기노령연금이나 조기퇴직연금은 개시연령에 도달해도 사망할 때까지 계속 감액된 연금을 받아야 한다. 그렇다면 조기연금을 받는 것이 정상 개시연령에 연금을 받는 것보다 불리할까, 유리할까?
국민연금의 노령연금을 5년 앞당겨 70%를 받는 경우와 정상 개시연령에서 100%를 받는 경우를 비교해 보자. 학창시절에 배운 방정식 ‘70(χ+5)=100χ’를 풀어보면 χ=11.6이다. 즉 정상 개시연령으로부터 11.6년 이상 연금을 받게 되면 조기노령연금이 불리하다. 1년 앞당겨 94%를 받으면 ‘94(χ+1)=100χ’ 즉 χ=15.6이다. 정상 개시연령에서 15.6년 이상 연금을 받게 되면 조기노령연금이 불리하다. 물론 일찍 사망해 이 기간보다 짧게 연금을 받는다면 조기노령연금이 유리하다.
같은 방법으로 계산해 보면 공무원연금의 경우 퇴직연금을 5년 앞당겨 75%를 받으면 χ=15, 1년 앞당겨 95%를 받으면 χ=19가 된다. 그래서 정상 개시연령으로부터 15년과 19년을 각각 더 살게 되면 조기퇴직연금이 불리하다.
결론적으로 60대 초반 연령의 기대여명이 20년을 좀 넘기에 평균적으로 사는 것을 가정한다면 조기연금이 정상연금보다 불리하다. 그리고 공무원연금보다 국민연금에서 좀 더 불리하고, 당겨 받는 연수가 짧을수록 더 불리하다.
또한 노령연금이나 퇴직연금이 충분한 것도 아니기에 연금을 감액해서 미리 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죽하면 몇 푼 안 되는 연금을 미리 받겠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렇기 때문에 현직에 있을 때부터 미리 무소득 크레바스를 대비해야 한다.
그렇다면 무소득 크레바스를 무슨 수로 뛰어넘을 수 있을까? 현직에 있을 때 절약하면서 개인연금을 들어 두거나 차근차근 저축해놔야 한다. 퇴직할 때 일시불로 받는 퇴직금을 적절하게 배분해서 사용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부동산을 마련해서 임대소득으로 소득 절벽을 대처하는 것도 좋다.
퇴직을 대비해서 가교직업(bridge job)을 준비해둔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허나 퇴직 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자영업은 무작정 뛰어들 것이 아니다. 퇴직금만 날리기 십상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치킨공화국, 커피숍 천국이 된 것은 장사가 잘돼서가 아니라 진입장벽이 낮아 쉽게 문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쉽게 문을 열 수 있는 만큼 쉽게 문을 닫는 것 또한 현실이다. 이 분야에 진출하더라도 미리 철저히 준비해야 실패확률을 낮출 수 있다.
‘노전(老前)’ 관리 필요
퇴직 후 소득 절벽! 결코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다. 퇴직 전에 빚부터 갚고, 은퇴자산은 효율적으로 활용하자. 자녀 교육비, 결혼비용도 얼마나 지원할지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퇴직 후 할 수 있는 경제적 일거리를 준비하자. 폼 나는 곳에 재취업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체면을 내려놓고 무엇이든 할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무소득 크레바스를 잘 넘기지 못하면 ‘노년파산’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노전(老前), 즉 늙기 전에 준비하자. 나이 든 다음엔 준비할 시간이 없다. 자!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최재식 공무원연금공단 이사장 silver206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