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전 경기도 광명시 소하동 기형도 문화공원. 단풍이 곱게 물든 공원의 쪽 길을 따라 들어가니 2.5m 높이의 시(詩)벽이 눈에 들어왔다. 4개 면으로 구성된 이곳엔 기형도 시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빈집'과 '엄마 걱정'이 걸려있었다. 그 옆으로는 지상 3층 규모의 건물이 있었다.
오는 10일 문을 여는 기형도 문학관이다.
기형도 시인을 기리는 문학관이 광명시에 들어선다. 1960년에 태어난 그는 연세대 정법계열을 졸업하고 1984년 중앙일보에 입사해 정치·문화·편집부 기자로 일했다. 1985년 1월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시 '안개'로 당선하며 등단했다. 이후 꾸준하게 작품활동을 하던 그는 1989년 1월 서울 종로의 한 극장에서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그러나 그가 숨진 뒤 발간된 시집 『입속의 검은 잎』(1989)과 산문집 『짧은 여행의 기록』(1990), 『기형도 전집』(1999) 등이 인기를 끌면서 '영원한 청춘'의 상징이 됐다.
문학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장 먼저 보이는 곳이 전시실이다. 파란색과 하얀색으로 깔끔하게 꾸몄다. 이곳을 관리하는 광명문화재단 관계자는 "청춘(靑椿)을 노래했던 시인을 기리기 위해 유가족 등의 의견을 모아 파란색으로 전시공간을 꾸몄다"고 말했다.
오는 10일 개관하는 경기 광명시 기형도 문학관
전시·도서공간 등 들어선 지상 3층 건물로 세워져
유가족 등에게 기증받은 유물만 130점
유족 등 의견 반영해 곳곳에서 시인 자취 발견
문학관 뒤편엔 기형도 문화공원도 들어서 있어
광명시, 정식 문학관 등록 및 각종 기념사업도 추진
광명시는 문학관 개관을 앞두고 시인의 유물 등을 모았다. 알음알음 유물을 확보했지만 수가 적었다.
이렇게 기탁받은 유물만 총 130여점에 이른다.
문학관은 전시하지 못한 남은 유물을 보관하기 위해 가습기와 제습기 등 전문 장비를 갖춘 수장고도 3층에 만들었다.
문학관 조성엔 시인의 가족과 시민들의 의견이 반영됐다. "예비 문학도를 위한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가족들의 제안에 2층엔 '시집 전문 도서관'과 북 카페가 생겼다. 그리고 예비 문학도를 위한 습작실도 마련됐다. 3층엔 주민들을 위한 체험·교육공간과 강당도 들어섰다.
문학관 개관을 알리는 포스터 사진도 유가족들이 골랐다. "시인이 밝게 웃는 모습을 썼으면 좋겠다"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기 시인의 문학관은 왜 광명시에 생길까. 광명은 시인이 유년·청년 시절을 보낸 곳이다. 5살이던 1964년부터 요절하기 전인 1989년까지 경기도 시흥군 소하리(현 광명시 소하동)에 살았다.
그래선지 그의 시 속엔 광명에 대한 묘사가 많다.
처녀작 '안개'의 첫 구절 "아침 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의 샛강은 시인의 집이 있던 '안양천'이다. '388 종점'은 그가 이용하던 388번 버스 종점이 배경이다. 중·고교 교과서에도 실린 '엄마 걱정'속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엄마가 갔던 시장도 광명에 있다. "주인은 떠나 없고 여름이 가기도 전에 황폐해버린 그해 가을, 포도밭('포도밭 묘지')"도 집 인근에 실제로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
문학관 인근에는 기형도 문화공원은 물론 KTX 광명역, 대형마트 등도 들어서 있다.
김세경 기형도기념사업회 회장은 "시인을 기리는 공간이 드디어 문을 연다니 감개무량하다"고 했다.
광명시는 전문성을 강조하기 위해 '기형도 전문가' 등으로 광명문화재단 직원들을 꾸렸다. 정식 문학관 등록도 추진하고 다양한 문화·체험 사업도 펼친다는 계획이다. 양기대 광명 시장은 "기형도 문학관의 개관은 광명이 인문·문학 도시로서 도약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광명시와 광명문화재단은 문학관 개관을 기념해 9일부터 11일까지 강연 및 축하공연을
열 예정이다. 9일에는 김응교 숙명여대 교수가 '윤동주와 기형도, 잔혹한 낙관주의를 넘어'라는 주제로 강의한다. 10일에는 개관식 및 소리꾼 장사익의 노래 공연이 펼쳐진다.
광명=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