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2000년대 들어선 콘크리트 환기구 대신 유리로 만들어진 투시형 환기구가 대세가 됐다. 투명하게 비치는 환기구는 보행자와 인근 상가의 시야를 틔워주어면서 만족도가 높았다. 공사비 측면에서도 콘크리트 환기구에 비해 10분의 1에 불과하다. 지금은 전국 시·도에서 이런 환기구를 쓰지 않는 곳이 없다.
투시형 환기구를 만든 주인공은 ‘지하철 수퍼맨’으로 불리는 김종호(56) 서울시 계약심사과 토목심사팀장(사무관)이다. 김 사무관은 34년간 토목 부서를 두루 거친 베테랑으로 지하철 공사 현장을 두루 섭렵했다. 터널이나 스크린도어, 환기구 등 지하철 과 관련된 시설 곳곳에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김 사무관은 “콘크리트 환기구에 대한 불편 민원이 끊이지 않아 고민하던 와중에 당시 유행하던 통유리 건물 시공법이 떠올랐다”면서 “유리로 건물 외벽을 대신할 수 있다면, 환기구도 마찬가지로 만들 수 있겠다는 아이디어에서 투시형 환기구가 탄생했다”고 말했다. 김 사무관은 이 공로를 인정받아 2000년 7급에서 6급으로 승진했다. 역세권 상인들뿐 아닌 김 사무관에게도 투시형 환기구가 “효자 노릇”을 한 셈이다.
서울시 김종호(56) 사무관 34년 토목 베테랑
2000년 '통유리 공법'서 착안 투시환기구 개발
인근 상가와 보행자 호평 속에 전국으로 확대
공적 인정받아 41회 청백봉사상 대상 수상
김 사무관은 이렇듯 지하철 공사 방법과 구조물 설치에 큰 힘을 보탰지만, 첫 공직생활은 지하철을 볼 일이 없는 곳에서 시작했다. 1983년 경남 의령에서다. “토목 기술직 공무원으로서 더 넓은 현장을 경험”하고 싶었던 그는 3년 후 서울시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다. 이 결심이 서울 지하철과 김 사무관의 인연의 출발인 셈이다.
‘현장형’ DNA는 공사비 심사 업무를 맡는 데도 도움이 됐다. 그는 2003년 서울시에 신설된 재무국 계약심사과의 창단 멤버다. 서울시와 산하 기관에서 민간에 발주한 공사현장에서 주간에 끝낼 수 있는 공사 일정을 야간에 잡아 인건비가 부풀려지지는 않았는지, 간이 흙막이를 설치해도 되는 곳에 가시설을 만들어 자재비가 비싸진 것은 아닌지 등 공법과 자재비용이 타당하게 책정됐는지를 심사하는 것이 그의 업무다. 그가 2003년부터 서울시 계약심사과에 근무하며 부풀려진 공사비를 바로잡아 절감 한 예산이 총 2775억, 그로부터 계약심사 노하우를 전수받은 울산·나주·원주 등 전국 지자체의 공무원이 약 2000여 명이다.
현재 그가 몸담고 있는 계약심사과는 공무원 사이에선 기피부서로 통한다. 예산을 깎는 것이 주 업무기 때문에 원성을 사는 일이 흔하고 현장의 궂은일을 도맡을 때도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 사무관은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기에 “후배들에게 공무원의 소명과 원칙을 지키는 일에 자부심 느끼게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공무원 표창을 받을 때 제출해야하는 가족사진이 한 장도 없더라고요.”
‘공직 생활 중 가장 아쉬운 점을 꼽아달라’는 주문에 그가 내놓 대답이다. 부실한 토목 공사는 큰 인명 피해를 낳는다. 그가 자정 이후 귀가해도 쉽게 잠들지 못했던 이유다. “한밤중에도 전화가 오면 언제든 나갈 수 있도록 긴장한채로 30년을 살았다”며 그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사무관은 공무원 생활의 공적을 인정받아 3일 개최되는 제 41회 청백봉사상 시상식에서 영예의 대상을 수상했다.
◆청백봉사상
홍지유 기자 hong.jiyu@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