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의 개혁 의지에 대해 의구심이 있다.”(11월 2일)
공정위원장, 5대 그룹 CEO 간담회
김상조 “기업 개혁 의지에 의구심”
취임 때 “자발적 변화 기대”와 차이
재계 “공익재단 문제 없지만 …” 촉각
이날 김 위원장은 자신의 인내심에 바닥이 드러나고 있음을 내비쳤다. 김 위원장은 최근 성장률 호전에 대해 “경영 환경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인이 노력해 기대 이상의 성과를 기록한 점에 감사드린다”고 운을 뗐다. 하지만 곧이어 쓴소리를 이어갔다. 그는 “일각에서는 기업의 소극적인 자세 때문에 새 정부의 개혁 작업이 지지부진함을 면치 못한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국민이 기업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도록 좀 더 세밀한 전략을 속도감 있게 진행해 줄 것을 당부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기업의 변화를 기다리지만은 않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당장 다음달부터 최근 신설된 기업집단국을 통해 대기업 소속 공익재단에 대한 전수조사를 벌인다. 공익법인은 사회 이익에 이바지하기 위해 학자금·장학금 또는 학술·자선 등에 관한 사업을 목적으로 설립된 법인이다.
김 위원장이 대기업 소속 공익재단을 정조준한 건 공익재단이 그룹 지배구조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편법 경영 행위에 악용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공익재단이 계열사 주식을 보유하게 된 이유가 공익사업을 위한 것인지, 오너가의 이해 관계 때문인지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현재 삼성은 삼성문화재단·삼성복지재단·삼성생명공익재단 등 3개의 공익법인을 운영하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현대차정몽구재단을 통해 사회공헌 활동을 하고 있다. 상당수 대기업집단 소속 공익법인은 같은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재벌닷컴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으로 20대 그룹, 40개 공익법인이 보유한 계열 상장사의 지분 가치가 6조7000억원에 이른다. 이 때문에 공익재단이 핵심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하며, 오너 일가의 승계나 지배력 유지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기업에 대한 김 위원장의 변화 요구는 광범위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5대 기업 CEO에게 ▶공정위의 로비스트 규정(윤리준칙) 준수 ▶기업지배구조 관련 모범규준 마련 ▶하도급거래 공정화 ▶노사관계에 있어 사용자 단체의 역할 강화 등을 추가로 주문했다.
김 위원장은 “공정위 소관업무가 아닐 수도 있고 법으로 강제할 성질의 것이 아닐 수도 있어 ‘오지랖이 너무 넓지 않으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공정위와 정부 정책의 기본 방향을 설명해 시장이 예측 가능성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며 그런 역할은 공정위가 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공정위의 공세에 재계는 몸을 낮췄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부회장은 “기업 스스로가 잘못된 관행과 결별하고 잘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더욱 발전시켜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남현·손해용 기자 ha.namhyu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