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기나 꿈과 목표, 과업이 있고 그것이 확인되면 목표를 향해 열정적으로 매진한다. 그곳에서 따뜻한 밥이 나오고, 가족과 함께 살고, 승진을 하고, 진학을 한다. 그러나 정해진 발달 단계의 과업과 상관없이 인생에는 권태와 허무라는 예정된 올무가 시시때때로 내려온다. 활기를 잃어버린 일상, 특히 실패 혹은 힘이 줄어드는 은퇴 시기에 대책 없이 떨어지는 허무는 당황스럽고 무겁다.
한순의 인생후반 필독서(2)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
조르바 이야기의 핵심은 '거룩하게 만들기'
"사업이 거덜나던 날 자유인 조르바는 춤췄다"
날것의 말과 몸짓
“새끼손가락 하나가 왜 없느냐고요? 질그릇을 만들자면 물레를 돌려야 하잖아요? 그런데 왼손 새끼손가락이 자꾸 걸리적거리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도끼로 내려쳐 잘라버렸어요.”
그리스인 조르바가 날것의 리듬으로 내뱉는 말이다.
“확대경으로 보면 물속에 벌레가 우글우글한대요. 자, 갈증을 참을 거요, 아니면 확 부숴버리고 물을 마시겠소?”
또 조르바는 카잔차키스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두목, 음식을 먹고 그 음식으로 무엇을 하는지 대답해 보시오. 두목의 안에서 그 음식이 무엇으로 변하는지 설명해 보시오. 그러면 나는 당신이 어떤 인간인지 일러 드리리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조르바 이야기의 핵심은 존재론적 질문은 물론, 성체(聖體)가 되는 것, 즉 ‘메토이소노’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메토이소노’는 ‘거룩하게 되기’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 물질과 정신의 임계상태 저 너머에서 일어나는 변화다. (…) 포도가 포도즙이 되는 것은 물리적인 변화다. 포도즙이 마침내 포도주가 되는 것은 화학적인 변화다. 포도주가 사랑이 되고 성체가 되는 것, 이것이 바로 ‘메토이소노’다.”
조르바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육체와 영혼’의 이분법적 틀을 이미 뛰어넘고, 존재의 본질들이 섞이고 변화하며 만들어내는 ‘거룩하게 되기’에 이른 구루다. “사업이 거덜 난 날, 세상에 거칠 것이 없는 자유인 조르바는 바닷가에서 춤을 추었고, 책상물림인 ‘나’, 즉 카잔차키스는 그 조르바를 그린 『그리스인 조르바』를 썼다.” 이것을 두고 카잔차키스는 이렇게 말한다. “보라, 조르바는 사업체 하나를 ‘춤’으로 변화시켰다. 이것이 바로 ‘메토이소노’다. ‘거룩하게 만들기’이다. 나는 조르바라고 하는 위대한 자유인을 겨우 책 한 권으로 변화시켰을 뿐이다.”
나의 두 눈을 통해 카잔차키스를, 카잔차키스를 통해 그리스인 조르바를 만나는 일은 접혀있던 삶의 확대경을 펼치는 것과 같다. 삶의 순간순간을 성화로 만드는 것, 허무와 열정 두 축이 만들어내는 ‘거룩하게 만들기’는 치열한 자만이 맛볼 수 있는 포도주다. 살아온 세월만큼 켜켜이 쌓인 인식의 허들. 그로 인해 굶주려진 허기에 영혼의 영양제를 맞아야 한다면 단연 『그리스인 조르바』를 택하라고 권하고 싶다. 열정과 허무가, 꽃과 상처가, 삶과 죽음이, 인간과 신이 임계상태를 너머 섞이고 변하고 승화하는 조르바라는 영양제를.
한순 도서출판 나무생각 대표 tree3339@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