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강남권에 재건축 시공사 선정을 위한 ‘큰 장’이 선 것은 내년 부활되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때문이다. 재건축으로 오른 집값의 일부를 재건축 부담금으로 국가에 납부하는 제도다. 2006년 노무현 정부 때 재건축 억제를 위해 도입됐다가 2012년부터 올해 말까지 잠정적으로 중단됐다. 집값이 크게 오른 강남권에서 부담금이 억대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재건축 추진 단지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올해 말까지 일반 분양계획 등 재건축 최종 계획안인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신청해야 한다. 인가 신청 전 단계가 시공사 선정이다.
7000만원 이사비 무상 제공부터 현금·명품백까지
건설사가 입찰 제안서를 통해 공개적으로 적법과 위법의 선을 넘나들며 수주 경쟁을 벌이는 뒤편에서는 조합원을 겨냥한 금품 제공이 판을 쳤다. GS건설이 ‘매표 시도 제보에 대한 신고센터’에 접수해 공개한 신고내역에 일부 드러나 있다. 50만~100만원 현금 다발, 50만~100만원어치 상품권, 100만원대의 명품 쇼핑백, 고가 수입 가전제품 등이 매표에 동원됐다.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한 현금·향응 제공 등은 주로 건설사와 홍보 용역을 맺은 용역 업체 소속 직원인 ‘OS(outsourcing)요원’이 맡고 있다. ‘홍보직원’으로도 불리는 이들은 진흙탕 수주 전의 밑바닥에 있는 ‘검은 손’인 셈이다. 이번 수주전 논란에서 이름도 생소한 이들이 주목받은 이유다.
원래 OS요원의 일은 조합의 업무를 보조하는 것이다. 재건축 사업 과정이 워낙 복잡해 전문성이 부족한 조합만으로 일을 모두 처리하기 힘들다. 1990년대 말 강남권 재건축 수주전이 시작됐을 때 생겼다. 처음엔 고객을 상대해 본 경험이 있는 보험설계사가 OS요원으로 활동했다. 현재 재건축 수주 용역 회사가 전국적으로 수백 곳에 이르고 OS요원 수는 수천 명으로 추정된다. OS요원은 일용직 근로자로, 일이 정신적·육체적으로 만만치 않다 보니 일당이 15만~20만원 선으로 다른 일용직보다 많은 편이다. 이들은 조합의 용역을 받아 조합설립 등을 위한 동의서 수집과 총회 진행, 이주 관리 등의 일을 한다.
문제는 수주전 용역이다. 1인당 조합원 5~10명을 맡아 건설사를 홍보한다. 조합원이 2200여 명에 달하는 반포주공1단지 수주전에서 입찰에 참여한 두 업체가 동원한 OS요원이 500~1000명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단순한 홍보에 그치지 않는다. 사실상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표심’을 사는 게 주된 임무다. 기본이 선물 공세다. 고객과 친분을 쌓으면서 필요한 것을 파악해 고가의 가전제품이나 명품 쇼핑백 등을 제공하는 경우가 많다. 조합원은 대개 처음엔 5만원짜리 선물도 부담스러워하지만 나중엔 수십만원, 수백만원짜리도 선뜻 받는다고 한다. 이들 비용은 대개 OS요원 개인 카드로 지불한다. 나중에 용역회사에 청구해 돌려받는다. 개인 카드비로 한 달에 1000만원씩 쓰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OS요원이 개인적인 용도로 쓰고 청구하다 말썽을 빚는 경우도 적지 않다.
선물 등으로 조합원에 들어가는 비용이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많을 때는 조합원당 1000만원은 되는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OS요원은 시공사 선정 총회의 투표에 앞서 열리는 부재자 투표 때 몇 달 동안 공을 들인 활동의 정점을 찍는다. 직접 조합원을 투표장으로 안내하며 표 굳히기를 하는 것이다. OS 요원이 함께 가기 때문에 업계에선 ‘동행 투표’라고도 한다. 부재자 투표 때 조합원을 데리고 오는 OS요원이 어느 업체 쪽이냐에 따라 사실상 승부가 갈린다. OS요원의 독려로 부재자 투표율이 80%를 넘기는 경우가 많다. 가끔 동행한 OS요원의 수와 다른 투표 결과가 나오기도 한다. 조합원이 ‘배신표’를 던진 것이다.
재건축 단지에서 입김이 센 ‘빅 마우스’는 주로 건설사에서 직접 관리한다. GS건설이 신고내용과 함께 공개한 ‘B/M(빅마우스) 특별관리자’ 명단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모 업체가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 명단에는 조합 이사대의원, 조합원의 이름과 계약금(500만~1000만원), 약정내용이 들어 있다. 약정내용은 지지자 30~50명 확보, 활동비 별도 지급 등이다. 이 업체가 선정될 경우 계약금의 3배를 준다는 내용도 있다.
건설사가 진흙탕 수주전에 OS요원을 쓰는 것은 자체 인력으로 조합원 모두를 상대하기 어렵기도 하지만 일이 터졌을 경우 ‘꼬리 자르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용역 업체에서 한 일로 건설사는 용역만 줬을 뿐 구체적인 위법 행위는 무관하다고 발뺌할 수 있는 것이다.
재건축 수주하면 3년은 일감 걱정 줄어
건설 업계 안팎에서 재건축 수주전 과정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토부와 지자체도 단속을 강화하고 있다. 정부는 수주전 불법에 대해 시공권 박탈, 시공사 선정 입찰 참여 제한 등의 강도 높은 제재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그동안 곪을대로 곪은 재건축 수주전 고름이 터졌다”며 “제도 보완과 업계의 자정을 통해 재건축시장이 정상화돼야 주택시장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다만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는 경우가 많아 재건축 적폐가 청산될지는 미지수다.
안장원 기자 ahnjw@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