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의 결정적 순간들 │ 일본 동맹외교의 명암
2017년 한반도의 지정학은 그대로다. 해양과 대륙세력의 결전장이다. 대륙세력은 시진핑의 중국. 해양세력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과 아베 신조(安倍晋三)의 일본이다. 미·일 동맹의 결속력은 단단하다. 한·미 동맹은 추월당했다. 동맹은 섬나라 일본의 본능이다. 나는 역사 현장을 추적했다.
1902년 영·일 동맹은
신흥국 일본의 국제정치 압승
러시아와의 전쟁 승리 발판 돼
하야시와 고무라의 국익 외교 성취
1941년 일·독·이 삼국동맹은
미·영을 적으로 만든 마쓰오카 오판
2차 세계대전 패망으로 이어져
21세기 아베 외교의 야망은
트럼프와 밀착해 시진핑 ‘중국몽’ 견제
미·일 동맹 결속력, 한·미 동맹 추월해
하야시 다다스(林董)는 영·일 동맹의 주연이다. 1900년 7월 그는 주영 공사로 부임한다. 그의 영어는 16세 때 영국 유학으로 연마됐다. 협상 상대는 영국 외무장관 랜스다운(Lansdowne). 가문의 5대 후작이다. 무대는 랜스다운 하우스. 런던 버클리 광장 근처다(지금은 멤버십 클럽). 나는 그곳을 찾았다. 건물의 외관은 수려하다. 안내인은 “250년쯤 된 건물인데 일부가 재건축됐다”며 “한 세기 전 동맹의 흔적은 랜스다운 초상화가 걸린 방에서 유추할 수 있다”고 했다. ‘크러시 홀’에 초상화가 걸려 있다. 원색의 화풍은 귀족의 체취를 쏟아낸다. 그 속에 치열하면서 노련한 협상 장면이 담긴 듯하다. 나는 건물 역사서를 펼쳤다. “하야시 공사는 이곳을 자주 방문한 교양 있는 신사다. 랜스다운 후작은 그에게 ‘일본인은 예의 바르고, 질서 있고, 믿을 만하다’는 평판을 전했다. 이는 중국에 대한 영국의 인식과 뚜렷이 대비된다.” “1900년 의화단 사건 때 러시아의 만주 점령은 중국에서 영국의 이익을, 조선에서 일본의 권익을 위협했다.” 러시아의 야심과 질주는 거셌다.
1901년 4월 본격 협상이 시작됐다. 랜스다운= “영국은 조선에 대하여 아주 미미한 관심밖에 없다. 그러나 영국은 조선이 러시아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싶지 않다.” 하야시=“조선에 대한 중립 유지는 쓸데없다. 조선인들은 자치 능력이 전혀 없다. ···조선에 대한 일본의 이해관계를 보호하는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는 조선을 폄하했다. (『하야시 다다스 비밀회고록』(A.M. 풀리, 신복룡·나홍주 번역)
영·일 동맹은 노골적이다. “영국의 권익은 중국과 연관돼 있다. 일본은 중국에서의 권익과 더불어 조선에 대해 특별한 이익을 갖는다.” 그 역사책은 단정한다. “조약은 일본의 조선 지배를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서명 장소는 랜스다운 하우스. 그때 런던에 대한제국 공사(민영돈)가 있었다. 그는 정세 변화를 몰랐다. ‘코리아 패싱’은 쇠락하는 나라의 징조였다.
2년 뒤 러·일 전쟁이 터졌다. 동맹의 비밀 각서는 위력을 과시했다. 일본의 해전 승리로 전쟁은 마감했다. 그 무렵 2차 영·일 동맹이 논의됐다. 주역은 랜스다운과 하야시 그대로다. 2차 동맹은 일본의 한반도 독점을 보장했다. 일본은 강대국 반열에 진입했다. 1921년 워싱턴 체제가 형성됐다. 영·일 동맹은 폐기됐다. 21년의 외교 동행이었다. 1931년 만주사변이 터졌다. 일본 체제는 군부 우위다. 그 풍광 속에 마쓰오카 요스케(松岡洋右)가 등장했다. 그는 제네바 대사 시절 국제연맹 탈퇴를 주도했다. 그의 강단 있는 영어 연설은 강렬했다(그는 미국 오리건대학 출신). 1940년 7월 외상이 된다.
동북아는 스트롱맨들의 각축장이다. 북한의 핵무장은 긴장 요소다. 시진핑 주석의 ‘중국몽(夢)’은 대담하다. 외교의 꿈은 19세기 말에 꽂혀 있다. 청·일 전쟁 이전 질서로의 복원이다. 아베 총리는 동맹의 역사적 묘미를 안다. 아베는 미·일 동맹을 다듬는다. 그 방식은 영·일 동맹의 복제라는 느낌이다. “일본이 대중국 포위망에 앞장서겠다. 미국은 일본을 지원해 달라”는 것이다. 아베와 트럼프의 밀월은 깊어진다.
[S BOX] 112년 전 러시아와 일본의 포츠머스 담판 … 비테의 여론동원 대 고무라의 절제외교
포츠머스는 미국의 뉴햄프셔주 항구다. 보스턴에서 북쪽으로 80㎞. 그곳에 거대한 해군기지가 있다. 그 안에 한 세기 전 회담장이 남아 있다. ‘빌딩 86’, 애칭은 평화빌딩. 3층 벽돌 건물 앞쪽에 대형 동판이 붙어 있다. “여기서 시어도어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 초청에 의해 러시아와 일본 외교사절 간 평화회담이 열렸다. 1905년 9월 5일 오후 3시47분 전쟁을 끝내는 포츠머스 조약이 체결됐다.” 그곳에서 ‘평화’는 불쾌하다. 이중성과 울분으로 다가온다. 고무라의 평화는 일본의 조선 지배다.
1905년 5월 러시아 발틱 함대는 쓰시마 해협에서 궤멸됐다.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의 역사적 승리다. 그것은 영·일 동맹의 효과다. 발틱 함대는 리예파야 항구(현재 라트비아)를 출발했다. 영국의 동맹 이행은 충실했다. 식민지 항구에 발틱 함대의 기항 거절, 석탄 공급 거부다. 7개월 항해의 함대는 기력을 잃었다. 루스벨트의 태도가 달라졌다. 친(親)일본에서 동북아의 세력 균형이다. 그는 종전 협상을 중재했다. 그해 8월 러시아·일본 대표가 테이블에 앉았다. 세르게이 비테 전 재상과 고무라 주타로(小村壽太郞) 외상이다. 고무라는 영·일 동맹의 주창자다. 그의 작은 키(1m56㎝)는 장신의 비테와 대비됐다.
고무라는 거기서 멈췄다. 일본의 전력도 바닥이 났다. 일본의 숙원은 이뤄졌다. 조약(2조)은 이렇게 보장했다. “러시아 정부는 일본 정부가 조선에서 채택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하는 지도·보호·감리 조치를 취하는 데 방해·간섭하지 않는다.” 그것은 을사늑약의 초대장이다. 그 무렵 제2차 영·일 동맹(8월 12일), 태프트(미국 육군장관) -가쓰라 밀약(7월 29일)이 있었다. 그 조약문도 비슷하다.
일본 규슈 남동부 미야자키의 니치난. 고무라의 고향이다. 그의 기념관이 있다. 전시물 대부분은 포츠머스 조약과 관련됐다. ‘혼(魂)의 외교관’이란 안내문이 있다. 혼은 외교의 절제다. 요시다 시게루(吉田茂) 전 총리의 인물평이 눈길을 끈다. “고무라는 어떻게 하면 일본 외교가 발전할 것인가를 대국적 견지에서 생각했다.”
런던(영국)·포츠머스(미국)·미야자키(일본)=글·사진 박보균 대기자 bgpark@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