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렴풋이 기억하는 44년 전 서울의 풍경은 제 조국 캄보디아와 별반 다를 바 없었습니다. 지금은 너무 많이 발전해 당황스러울 정도네요. 한국이 단기간에 아시아 최고의 축구 강국으로 발돋움한 이유도 마찬가지겠죠."
지난 18일 서울 효창운동장에서 만난 전 캄보디아 축구 국가대표 펜 파스(70)는 자국에서 스포츠 영웅 대접을 받는 인물이다. 현역 시절이던 지난 1973년 한국에서 열린 제3회 박대통령컵 국제축구대회(박스컵)에 참가해 크메르(캄보디아의 옛 이름)의 공동 우승을 이끌었다. 뿐만 아니라 캄보디아 출신 축구선수로는 유일하게 유럽 리그에 진출해 독일(보루시아 묀헨글라드바흐)과 프랑스(파리 FC) 무대를 누볐다. 그가 자국 축구팬들 사이에서 '캄보디아의 차붐(차범근 전 축구대표팀 감독의 별칭)'이라 불리며 존경 받는 이유다.
춘천 한민족축구대회에 특별초청
1973년 박대통령컵 사진 선물 받아
“우승컵 든 주장 킬링필드에 희생”
펜과 함께 한국에서 박스컵 우승을 이끈 대표팀 멤버들 중 생존자는 극소수다. 대부분 1975~79년에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이른바 '킬링 필드(크메르 루주 공산 정권이 체제 유지를 위해 150만 명을 학살한 사건)'의 희생자가 됐다. 펜은 "당시 공산주의에 반대한 지식인들은 예외 없이 처형 당했다. 안경을 썼거나 헤어스타일이 단정해서, 심지어 지문이 선명하다는 이유로 끌려가 죽임을 당한 이들도 있었다"면서 "수입이 좋고 국민적으로 큰 인기를 누리던 축구선수들도 화를 피하지 못했다"고 했다. 당시 펜 씨는 독일에서 선수로 뛰고 있어 목숨을 건졌다.
펜은 국내 체류 기간 중 귀한 선물을 받았다. 박스컵 우승 당시 캄보디아대표팀 주장이던 속 론(사망)이 공동 우승팀 버마(미얀마의 옛 이름) 선수와 우승컵을 함께 들고 있는 대형 컬러사진이다. 당시의 사진을 수집해 보관 중이던 축구용품수집가 이재형 씨가 펜 씨의 방한 소식을 듣고 이를 흔쾌히 전달했다. "박스컵 우승 당시에 캄보디아 취재진이 단 한 명도 한국에 건너오지 않아 우리나라엔 없는 사진"이라 언급한 펜은 "속 론도 '킬링 필드' 희생자다. 그의 가족과 캄보디아축구협회에 이 자랑스런 사진을 전달하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민족축구대회를 통해 오랜만에 축구 경기를 제대로 즐겼다는 펜은 "축구를 하기 위해 전 세계 한인들이 매년 한 번씩 한국에 모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다"면서 "한국이 경제와 축구 모두 선진국 반열에 오른 건 한국인 특유의 열정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에 한국 축구대표팀 경기력이 부진해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캄보디아인 입장에서는 월드컵 본선에 오른 것만으로 꿈 같은 상황"이라면서 "한국 뿐만 아니라 아시아를 대표한다는 각오로 러시아 월드컵에서 최선을 다 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한민족축구대회를 주최한 김성수(61) 한민족축구협회장은 "이 대회가 한민족으로서의 일체감을 다지는 자리를 넘어 우리 민족과 세계인이 교감하는 기회의 장이 될 수 있도록 문호를 확대할 것"이라 말했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