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는 26일 천모씨 등이 낸 헌법소원사건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천씨는 2006년 8억원의 조세를 포탈한 혐의로 2015년 6월 기소돼 120억원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법원은 천씨가 벌금을 내지 않을 경우 1000일 동안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명령했다.
2014년 5월에 개정된 형법 70조는 법원이 선고한 벌금을 내지 않는 피고인에 대해 벌금 1억~5억원 미만은 300일 이상, 5억~50억 미만은 500일 이상, 50억원 이상이면 1000일 이상 노역장에 유치하도록 했다. 고액 벌금형을 선고받고도 내지 않고 버티다가 노역장에 유치되는 경우 벌금액수에 따른 하한선이 없어서 일당이 수백만원으로 계산되는 이른바 ‘황제노역’ 논란이 일자 개정된 것이다.
헌재는 “노역장 유치 조항은 벌금 액수에 따라 단계별로 유치 기간의 하한이 증가하도록 해 범죄의 경중이나 죄질에 따른 형평성을 도모하고 있고, 노역장 유치로 벌금형이 대체된다는 점에서 그로 인한 불이익이 노역장 제도의 공정성과 형평성 제고라는 공익에 비해 크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개정된 조항을 소급적용하도록 한 형법 부칙 2조 1항 등은 형벌불소급원칙에 어긋난다며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위헌으로 판단했다. 형법 부칙 2조 1항은 개정된 형법 70조를 시행일 이후 기소된 사건부터 적용하도록 했다. 법 시행 전에 범죄를 저질렀어도 검찰이 법 시행일 이후 재판에 넘기면 개정 조항이 적용된다.
헌재는 “노역장 유치는 벌금형에 부수적으로 부과되는 처분으로 그 실질은 징역형과 유사한 형벌적 성격을 갖고 있다”며 “동일한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람에게 노역장 유치 기간이 장기화하는 등 불이익이 가중된 때에는 범죄 행위시의 법률에 따라 유치 기간을 선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형법은 ‘범죄 후 법률의 변경에 의하여 그 행위가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거나 형이 구법보다 경한(가벼운) 때에는 신법에 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당시의 법(신법)이 피고인에게 유리한 경우에는 신법을 적용한다. 헌재 관계자는 “문제의 형법 부칙은 형법의 원칙과 헌법 원리에 어긋난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