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1년]“권위 벗었지만 보수세력은 국민 무서운 줄 몰라”

중앙일보

입력 2017.10.26 15:44

수정 2017.10.2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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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이 지난 25일 부산참여연대 사무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은지 기자

“권위 벗고 소통 늘었지만, 보수 세력은 여전히 국민 무서운 줄 모른다.”
 
보수 정권이 장악하고 있던 부산에 촛불집회를 이끌며 시민의 힘을 보여준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의 말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시민단체와 노동단체, 정당 등 100여 개 이상 단체로 구성된 ‘박근혜정권퇴진 부산운동본부’(이하 부산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을 맡아 맹활약했다. 부산에서 촛불집회는 24차례 진행됐고, 참가 인원은 93만1800명(20차까지 기준) 등 100만여 명에 달했다. 부산 시민 3명 중 1명꼴로 촛불집회에 참여했다.  

'부산 촛불' 이끌었던 양미숙 부산참여연대 사무처장
"지난 1년간 부산 지역 주요 적폐는 별로 달라진 것 없어
폐쇄·권위적이던 정치권·청와대 국민곁 한발 다가온 건 성과
신고리 5·6호기 재개, 문 대통령 공약 지지했던 국민 배신한 것
문 정부, 공정사회 위한 국정과제 추진하되 숙의과정 거쳐야"

지난 25일 부산 참여연대 사무실에서 만난 양 사무처장에게 촛불집회 이후 지난 1년 동안 달라진 게 뭐냐고 물었다. “별로 없다”는 냉소적인 답이 돌아왔다. 
'엘시티 비리', ‘부산국제영화제 블랙리스트’, ‘부산지하철노조 간부 해임’ 등 부산 지역의 적폐라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그는 “부산의 적폐를 낳은 시스템을 바꾸고 제도 개선을 해야 하는데 달라진 게 없다”며 “보수 정권이 장악하고 있는 부산은 문재인 정권 눈치를 보며 생색내기용 정책을 내고 있지만 허점 투성이”라고 지적했다.  
 

박근혜정권퇴진 부산운동본부는 지난해 12월 24일 부산 서면 중앙로에서 박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진의 구속 퍼포먼스를 펼쳤다. [사진 중앙포토]

예를 들어 해운대 엘시티 비리 사건 이후 부산시가 도시계획위원회 회의록을 공개하겠다고 했는데 위원들의 이름은 가린 채 공개하는 식이다. 또 부산시가 소상공인 지원 정책을 내놓으면서 이마트타운 건립 허가는 내주는 이율배반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는 게 양 사무처장의 주장이다. 그는 “중앙에서 정권이 바뀌고, 내년 지방의회 선거까지 앞두고 있어 지자체가 국민 눈치를 보고 있지만, 정책의 진정성은 찾아볼 수 없다”며 “보여주기식 시정에 그친 탓에 부산 시민의 삶은 별로 나아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특히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문 정부의 국정 로드맵을 ‘신(新)적폐’로 규정한 것은 국민의 힘을 우습게 보는 처사라고 꼬집었다. 양 사무처장은 “촛불의 힘으로 들춰낸 적폐를 덮고 새로운 프레임을 짜기 위한 전략으로 ‘신적폐’라는 단어를 들고 나왔다”며 “정권 교체를 일군 국민의 힘을 무서워하지 않는다는 방증”이라고 해석했다. 

박 대통령의 하야와 헌재의 신속한 탄핵 인준을 요구하는 부산 촛불집회가 지난해 12월 24일 부산 부산진구 서면 중앙로에서 2만여명의 시민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사진 중앙포토]

 
권위적이고 폐쇄적이던 정치권과 청와대가 문턱을 낮추고, 국민의 알권리가 강화됐다는 점은 성과로 꼽았다. 그는 “국정원과 국방부 비리, 블랙리스트의 존재 등 과거의 적폐가 드러나 국민도 알게 됐고 세월호 사태 진상규명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며 “촛불집회의 경험을 공유한 국민의 주권의식이 강화되고 시민의식이 높아져 대한민국 사회가 한 단계 성장했다”고 평가했다.     


국민의 기대가 큰 만큼 문 정부가 국민에게 실망을 안겨주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 점에서 신고리 5·6호기 건설재개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지지해준 국민에 대한 배신이었다고 잘라 말했다. 
양 사무처장은 “문 대통령이 합리적인 근거나 논리를 제시하지 못한 채 공론화위원회에 책임을 떠넘긴 것은 비겁했다”며 “사드 배치,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등 외교·안보나 이권이 개입된 사안을 국민에게 소상히 공개할 수 없더라도 최소한 합리적이고 납득할 만한 입장을 발표하는 게 문 대통령의 책무”라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19일 부산 기장군 장안읍 해안에 있는 고리원전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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