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전시를 마친 러시아 스트리트아트뮤지엄의 '혁명 100주년' 기념 전시회 '밝은 날이 오고 있다'는 러시아 내에서 1917년 벌어진 혁명에 본격적으로 해석을 시도한 보기 드문 사례다. 이번 전시엔 러시아 작가들을 포함해 전 세계 12개국 60명의 예술가들이 참여했다.
러시아 공산 정권 일으킨 혁명 100주년
푸틴 정부는 기념 행사 없이 지나가
정권 홍보에 도움 되는 스탈린만 우상화
그러나 국민들은 "우리는 잊지 않았다"
"스탈린이 억압한 기억 남아 있다" 반발도
동구권 국가선 아직 남은 소련 흔적에 고심
올해 초 러시아 왕정을 종식시킨 2월 혁명 100주년을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보낸 러시아 정부는 오는 11월 7일 세계 첫 공산 정권을 수립한 10월 혁명 100주년 기념일에도 공식 성명을 내놓지 않을 전망이다.
이석호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 상트페테르부르크 관장은 "일부 박물관들이 자체적으로 행사를 하고는 있지만 러시아 정부 차원의 공식적 기념 행사는 없다"며 "혁명일이 다가오고 있지만 상트페테르부르크 주민들도 혁명 100주년이라고 해서 행사를 기대하거나 관심을 드러내는 분위기가 아니다"라고 전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유럽대학의 보리스 콜로니츠키 교수는 "실용주의자인 푸틴 대통령은 혁명에 부정적이지만 공개 석상에서 그런 얘기를 잘 꺼내려 하지 않는다"며 "혁명 얘기를 꺼내봐야 국론이 분열되고 지지층만 잃을 뿐 푸틴 대통령으로선 얻을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혁명을 기념하기는 싫고, 부정할 수도 없으니 마치 아무 일도 없는 척 무시한다는 설명이다.
푸틴 정부의 침묵 속에 러시아 국민들의 혼란은 깊어져 간다. 혁명을 둘러싼 러시아인들의 감정은 복잡하게 얽혀있다. 혁명이 일어난 시기부터 따지면 100주년이지만 옛소련이 무너지면서 혁명이 실패로 종결된 것은 고작 26년 전인 1991년이다. 혁명에 얽힌 러시아인들의 기억이 정리되기엔 짧은 시간이다. 혁명이 필요한 일이었는지 아니었는지, 무엇을 계승하고 어떤 점을 반성해야 할지에 대한 러시아인들의 생각은 제각각이다.
러시아 최후의 황제 니콜라이 2세는 러시아인들이 겪고 있는 혼란을 잘 보여준다. 1917년 러시아인들은 혁명의 열기 속에 니콜라이 2세와 그 일가를 왕좌에서 끌어내 총살했다. 그러나 소련이 붕괴하고 10여년 뒤인 2000년 러시아 정교회는 니콜라이 2세 일가를 성인으로 시성했다. 공산주의자들에 의한 정치 탄압의 희생양이 됐다는 이유에서다.
그럼에도 러시아 정부는 니콜라이 2세의 처형을 주도한 외교관 표트르 보이코프의 이름을 딴 지하철역 '보이콥스카야'의 이름을 그대로 방치하고 있다. 니콜라이 2세가 혁명 광기의 희생양이었는지, 아니면 처형당해 마땅했던 폭군이었는지 평가가 정리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월 러시아 여론조사 업체 레바다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러시아인들은 러시아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로 스탈린을 꼽았다. 소련 붕괴 직전인 1989년까지만 해도 레닌이 72%의 지지를 얻어 위대한 인물 순위에서 압도적 1위를 기록한 반면 스탈린은 12%의 지지밖에 얻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6월 여론조사에선 스탈린이 38%의 지지율로 1위,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의 대문호 알렉산더 푸시킨이 34%로 2위를 기록했으며 레닌은 32%로 4위에 그쳤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거주하는 학생 아냐(20)는 "옛 사상은 잊혔지만 우리 러시아인들이 압제에 맞서 역사상 가장 강력한 혁명을 일으켰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며 "러시아 혁명은 우리 기억에 새겨진 도장 같은 것이다.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스트리트아트뮤지엄의 그리보바는 "푸틴 정부는 혁명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른다. 저항의 역사인 혁명을 가르치면 정권에 위협이 된다고 생각해 피해가려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잔혹한 사건이 반복되지 않도록 역사를 돌이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리보바는 이렇게 강조했다. "우리는 잊지 않는다. 우리는 말하는 게 두렵지 않다. 이것이 우리가 이번 전시를 통해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이기준 기자 foridealist@joongang.co.kr
이름 바꾸고, 간판 부수고…동구권에도 남은 혁명의 흔적
대표적인 것은 폴란드 바르샤바 도심 한가운데 솟은 마천루, 문화과학궁전이다. 높이 42층, 면적 23000㎡로 바르샤바 도심 어디에서도 쉽게 눈에 띄는 이 건물은 영화관, 공연장, 쇼핑몰 등 각종 문화·편의 시설을 갖추고 있다.
문제는 이 건물이 1955년 스탈린에 의해 지어졌다는 것이다. 당시 공산주의 국가였던 폴란드를 사실상 지배했던 스탈린은 러시아 노동자 5000명을 바르샤바에 파견해 이 건물을 짓게 했다. 바르샤바 주민들에게 이 건물은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귀중한 시설인 동시에 치욕스러운 강점의 산물이기도 하다. 때문에 폴란드에선 이 건물을 철거하자는 주장부터 도색을 새로 하자, 그냥 내버려두자는 등 다양한 의견이 오간다.
그러나 이 건물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주민 상당수도 없어선 안될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건물 전망대에서 만난 바르샤바 주민 모니카(43)는 "종종 어린 딸을 이곳에 데려와 도시를 보여준다"며 "역사적으로 반감이 없지는 않지만 이젠 이 건물이 없는 바르샤바는 상상하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폴란드의 민주화 성지로 알려진 그단스크 조선소도 폴란드가 공산국가였던 1967년부터 89년까지 블라디미르 레닌 조선소란 이름이었다. 폴란드가 민주화되면서 조선소 정문에 걸려 있던 레닌 간판은 폐기됐지만, 2012년 일부 정치인들이 이 간판의 역사적 중요성을 강조하며 복원시켜 재차 논란이 되고 있다.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민주화 성지에 레닌의 이름은 어울리지 않는다'며 시위를 벌였고 몇몇 강성 단체들은 이 간판을 떼어내 파괴하기도 했다.
반면 친러 성향이 짙은 국가들은 러시아 혁명을 국정에 적극 이용하고 있다. 바르샤바에서 유학 중인 벨라루스인 보바 아가얀은 "벨라루스 대통령은 지지층 결집을 위해 혁명을 이용하고 있다"며 "대통령 궁전 앞에 레닌 궁전을 짓는 등 레닌을 자기 정권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바르샤바·그단스크·빌니우스=이기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