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을 위협하고 있는 '기후변화'가 트럼프 미 행정부에서는 '적폐'와 다름없다. 파리기후변화 협약에서 탈퇴를 선언하고, 오바마 전 행정부의 ‘청정전력계획’을 폐기하는 등 기후변화의 ‘기’자도 꺼내지못하는 분위기다.
기후변화 관련 정책을 주도했던 미 환경보호청(EPA)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가장 혼란스러운 곳이다. 기후변화의 첨병 역할을 하면서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다 지금은 기후변화를 야기하는 업종 기업의 ‘비즈니스 프렌들리(Business friendly)’ 서비스 기관으로 전락했으니, EPA직원들은 유구무언이다.
환경보호청 내에서 기후변화는 금지어로 변해
수질보호 책임자엔 화학기업 이익대변자 앉혀
트럼프 행정부에서 가장 혼란스러운 기관 돼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콘퍼런스 장소 밖에서는 EPA의 이해할 수 없는 처사에 항의하는 사람들이 입에 테이프를 붙이고 시위를 벌였다. “거부는 정책이 아니다”, “과학에 재갈을 물리지 말라”는 피켓을 들었다. 짐 랜지빈 하원의원(공화)은 “과학은 있는 그대로 말해야 하는데, 이번 결정은 선한 과학의 입을 막는 처사”라며 “기후변화는 공화와 민주 당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 행성을 보호하는 이슈”라고 분노했다.
비영리 과학단체인 ‘참여 과학자 모임’(Union of Concerned Scientists)은 프루이트 청장의 청정전력계획 폐기방침에 대해 “이해 상충에 따라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오염된 것”이라며 “행정부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중대한 문제들 중 하나를 해결하는 대신, 과학을 조롱했으며 지금은 법을 조롱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EPA내 수질보호를 담당하는 부서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지난 5월 낸시 벡 박사가 수질보호 부서를 책임지면서 빚어진 결과다. 벡 박사는 그 전까지 다우와 듀폰 등 미국 내 화학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단체인 미국화학위원회 사무총장을 지냈다.
벡 박사는 취임 이후 인간의 건강을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화학물질에 대한 규제를 느슨하게 바꾸는 정책을 일관되게 펼치고 있다. 해당 화학물질의 위험성이 완벽하게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를 앞세웠다. 벡 박사는 이같은 규제를 ‘유령 규제’라고 불렀다.
느슨해진 규제는 화학기업의 비용을 줄이면서 이익을 늘려주는 효과를 내고 있다. 화학기업들은 일자리를 늘리면서 트럼프 행정부에 보답할 수 있다.
수질보호 부서내 몇몇 직원들이 이같은 결정을 문제삼고 재심의해줄 것을 요청했지만 프루이트 청장은 기각했다. EPA의 리즈 보우먼 대변인은 “부적절하면서 편협한 인식에 기초한 엘리트들이 백악관이 검증한 리더를 공격하고 있다”는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보우먼 대변인 또한 화학위원회 대변인 출신이다.
뉴욕=심재우 특파원 jwshim@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