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데이트 폭력으로 입건된 인원은 지난해 8367명이었다. 최근 5년간 연인으로부터 폭행이나 죽임을 당한 피해자가 연평균 10% 이상 급증하며 총 3만6000여 명에 달했다. 이게 다가 아니다. 젊은 여성 상당수가 자신이 당한 것이 데이트 폭력인지 모르거나, 이를 경찰에 신고할지 말지 고민한다.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데이트 폭력과 스토킹 사례는 통계자료보다 많다. 상담 사례를 보면 많은 여성이 헤어진 옛 연인의 보복이 두려워 다시는 누군가와 연애를 시작하는 것조차 겁난다고 호소한다. 데이트 폭력으로부터 보호받을 제도적 장치가 별반 없기 때문이다.
폭행과 살인에 이른 경우에만
국가가 개입하는 데이트 폭력
광범위한 여성 폭력 대책 더해
‘사랑의 기술’ 교육이 근본처방
여기서 우리는 묻게 된다. 때론 목숨을 잃기까지 하는 데이트 폭력에 대해 국가가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가 하는 질문이다. 영국의 경우 친밀한 파트너 또는 가족 구성원이 16세 이상의 사람을 성별 또는 성적 정체성과 상관없이 통제·강요·위협·폭력·학대하는 행위를 ‘가정폭력’의 범주에 포함하고, 일명 ‘클레어 법’을 통해 가정폭력 전과를 공개하도록 한다. 미국도 ‘여성폭력방지법(Violence Against Women Act of 1994)’을 통해 친밀한 관계이거나 과거에 그런 관계였던 연인의 폭력을 중대 범죄로 규정했다.
한편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더 폭넓은 법률적인 개선 방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연인이든 부부든 혹은 낯선 사람이든 폭력 행위는 개별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성에 대한 무자비한 폭력의 발로이기 때문에 이 모두를 포괄할 가칭 ‘젠더폭력방지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젊은 세대를 위해 지금 우리가 할 일은 단지 법률 제정만이 아니다. 타인과의 아름다운 만남이 잔혹한 폭력으로 물들지 않도록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진지한 성찰이 있어야 한다. 연인과의 만남에서 서로가 어떤 것을 원하는지 물어 동의를 구함으로써 성행위에 이르는 것이 사랑의 자연스러운 태도라는 것을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이를 제대로 하고 있는지 기성 세대는 반성할 필요가 있다.
음란물 속에서 물리적·강제적으로 표현되기 일쑤인 성행위를 이런 깨우침보다 먼저 접하고, 술에 취해 강압적 방식으로 상대방을 제압한 뒤 마음을 얻는 것이 남자다움의 상징이요 사랑의 쟁취라고 생각하는 젊은이가 적지 않다. 여성은 연인이 언제든 폭력범으로 돌변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이미 발생한 사건을 집중 부각하는 미디어의 선정적 보도 태도도 문제다. 단순 사건 보도는 잠재적인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젊은 여성들의 두려움만 증폭시킬 뿐이다. 폭력을 당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것이 사랑인지 폭력인지 헷갈릴 경우 그것은 폭력이라는 것을 가르쳐주고 이럴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해 차분하게 알려줘야 한다. 데이트 폭력의 피해를 경험한 여성의 절반은 연인 관계 초기에 폭력이 발생했을 때 이것이 애정 표현인가 폭력인가 혼란스러워하면서 관계를 중단하지 못하고 지속하기 일쑤기 때문이다.
장미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권익안전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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