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른 생각을 바로 언행으로 옮기지 않으면 못 배기는 트럼프의 즉흥적 성격을 비난하며 워싱턴 인사들이 종종 인용하는 스토리다. 하지만 신기한 건 그 누구도 이 스토리를 자녀 5명을 모두 명문 사립 중·고교에 보낸 트럼프의 ‘공립학교 능멸’로 연결하진 않는다는 것.
“교육 특권층” 규정할 특권 누구도 없어
일반고 현실 개선, 어렵지만 우선해야
일본도 마찬가지. 특파원 재임 당시 한 일본인 지인이 아들을 게이오 유치원·초등학교에 보내는 데 연달아 실패하자 고민하는 걸 봤다. 면접 때 부모의 경제적 능력 항목에서 떨어진 것 같다는 한탄이었다. 그런데 그가 제도 탓을 하지 않고 ‘게이오 고교 보내기 9개년 계획’을 세우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아마 우리 같았으면 학부모다 정치권 모두 들고일어나 그 학교 존폐를 위협했을 것이다.
최근 국감에서 야당의원들이 “자사고·외고는 적폐이니 사회에서 없어져야 한다고 (현 정권은) 생각한다. 그럼 이를 선택한 학생은 적폐이고 부모는 적폐부모가 되냐”고 묻는 장면을 봤다. 더 기가 막힌 건 “특혜·특권이라는 교육 불평등을 제공하는 자사고·외고 시스템은 우리 교육에서 사라져야 한다”는 교육감의 답변.
곰곰이 생각해 보자. 대한민국이 사회주의를 택하지 않는 한 애초부터 완전 평등한 환경에서 경쟁하는 게 과연 가능한 일일까. ‘교육 사회주의’의 길이 옳은 것일까. 그게 옳다면 왜 미국·일본은 그 길을 가지 않았을까. 애당초 우리 국민이 “자사고·외고는 특권층”이라 규정할 수 있는 특권을 그들에게 부여한 건 맞나.
가진 거라곤 사람뿐인 한국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헤쳐 갈 재주 많고 매력적인 인재를 키워 내는 게 교육의 핵심이다. 진보의 가치 운운하며 자사고·외고 폐지를 외치는 ‘쉬운 일’만 하려 할 게 아니라 한 반에 몇 명을 제외하곤 다 엎드려 자는 일반고의 현실을 개선하는 ‘어려운 일’을 먼저 해야 한다. 그게 제대로 된 순서이고 본질이다. 그걸 거꾸로 하는 자본주의 선진국은 없다. 며칠 전 거미 한 마리를 죽이려고 화염방사기를 분사하는 바람에 집을 태워먹은,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속담이 실제 뉴스가 된 게 있었다. 교육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교육열을 본받아야 한다”고 외쳤던 오바마 전 미 대통령. 자사고·외고 폐지 운운하는 지금 우리 모습을 보며 뭐라 할까. 아마도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싶다. “글쎄, 즉흥적인 트럼프라도 그렇게는 안 할 걸.”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