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임종을 맞을 때 주위 사람에게 덤터기 씌우지 않으려 해요. 우리 부부가 고통을 면할 수 있다면 임종을 기꺼이 받아들이겠어요. 이런 마음을 먹고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이하 사전의향서)를 쓰려고 왔어요."(최씨)
"모든 상황에서 연명의료를 중단하는 게 아니라 담당 의사 1명과 전문의 1명이 함께 ‘이 환자가 임종 과정에 있다’라고 판단해야만 중단 결정을 할 수 있습니다."(윤서희 상담사)
"의사 선생님의 이야기(판정)가 있어야만 (중단한다는 거죠)?"
"환자가 급속도로 상황이 나빠져서 임종 과정에 있다고 의사 선생님 두 분이 판단해야만 효력이 발생한다는 것이죠."(윤 상담사)
"임종 시에만 그런 거죠? 평소에 그리하는 게 아니고."(최씨)
23일 연명의료 중단 합법화(일명 존엄사) 시범사업 시행 첫날, 최씨 부부와 같은 웰다잉(Well-dying)에 관심이 높은 사람들이 일찌감치 사전의향서를 작성했다. 사실모·각당복지재단·대한웰다잉협회·세브란스병원·충남대병원 등 사전의향서 작성 시범기관 5곳에는 온종일 문의가 잇따랐다. 종전에도 사전의향서가 있었지만 사실모를 비롯한 민간기관이 만든 양식이어서 법적 효력이 없었다. 이날 사실모에는 14명이 사전의향서를 작성했고 30여명이 문의했다.
웰다잉법 시범사업 첫날 사전의료의향서 작성 잇따라
인공호흡기·심페소생술·혈액투석·항암제 거부 서약서
정부전산망에 등록돼 24시간 열람해 존엄사 선택 도와
연명의료계획서는 말기환자에 권하기 힘들어 거의 전무
사전의향서는 임종 단계에서 심폐소생술·인공호흡기·혈액투석·항암제 투여 등의 네 가지 연명 행위를 거부한다는 뜻을 담은 서약서이다. 항목 별로 선택할 수 있다. 호스피스 이용 여부를 담는다. 사전의향서를 썼더라도 영양·물 공급 등의 일반적 연명의료는 반드시 해야 한다.
회사 대표 김모(59·여·경기도 고양시)씨는 이날 서울 종로구 각당복지재단에서 사전의향서를 작성했다. 네 가지 연명의료 행위를 모두 하지 않겠다고 체크했다. 김씨는 "연명 장치를 차고 누워 있으면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의식이 없고, 내 의지대로 아무 것도 못한다. 그렇게 생을 마감하고 싶지 않아 한 달음에 달려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모부가 2년 반 동안 연명의료를 하다 고생한 게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다"며 "아들이 사전의향서 작성을 반대하는데, 적당한 시기가 오면 이미 작성한 사실을 알려주려 한다"고 말했다.
허대석 서울대병원 종양내과 교수는 "의료진이나 가족이 말기환자에게 '인공호흡기를 달지 않으셔야 한다'고 연명의료 중단(유보)를 설득하거나 설명하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다"며 "앞으로도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는 사례가 많지 않을 것으로 보여 실효성이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백수진 기자 ssshi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