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당을 창당하고 직접 당 대표를 맡으며 고이케는 선거전을 흔드는 주요 변수로 떠올랐다. “아베 1강 정치에 긴장감을 줘야 한다. 낡은 정치, 기득권을 우선하는 세력과 싸우겠다”며 내걸었던 ‘일본 리셋’ 슬로건이 유권자들에게 먹혀들었다. 선거 초반 여론조사에서 희망의당은 단숨에 10% 후반대의 지지율로 정치권을 뒤집어놓았다. 예상 의석수가 100석을 넘었다. 심지어 “이런 기세라면 정권 교체도 가능할지 모른다”는 기대감까지 만들어냈다.
희망의당, 선거 초반 급부상했지만
반아베표 분산, 자민당 압승 기여
민진당 리버럴계를 배제한 자리에 정치 경험이 없는 ‘고이케 키즈’를 내려꽂자 유권자들은 더 등을 돌렸다. 야당 분열로 ‘반(反)아베’ 표를 분산시킨 것도, 민진당 내 개헌 찬성파를 따로 모아 줄세운 것도 결국 아베 총리가 고마워할 일이었다. 정작 본인은 선거에 출마하지 않았고, 결국 희망의당은 고이케가 ‘배제했던’ 민진당 출신들이 만든 입헌민주당과 2위 싸움을 해야 하는 처지로 전락했다. ‘아베의 대항마’라기보다 ‘아베의 공신’으로 기억될 고이케, ‘아베의 오만에 대한 심판’이던 선거전의 성격이 ‘고이케의 오만’ 탓에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 버렸다.
도쿄=윤설영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