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은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숙원이다. 의석수가 줄어들 가능성이 큰 데도 중의원을 전격 해산한 걸 두고도 “개헌 추동력을 얻기 위해서”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의석수로만 따지면 선거 전에도 자민·공명당은 전체 의석(475석)의 68%(324석)를 점유해 개헌 추진이 가능했다. 하지만 아베 본인과 부인 아키에 여사가 연루된 사학비리 스캔들, 또 7월초 도쿄도의회 선거 참패로 내각 지지율의 급격히 하락하면서 개헌 추동력은 떨어졌다. 억지로 개헌안을 의회에서 처리한다 해도 국민투표라는 장벽에 부딪힐 공산이 크다고 봤을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아예 판을 뒤집는 모험을 시도한 것이다.
아베, 평화헌법 손질 속도 낼 가능성
지난 5월엔 “헌법에 자위대 명기”
여론은 개헌 찬성보다 반대 많아
무리하게 서두르다 역풍 맞을 수도
자민당의 압승이 확실시된 22일 밤 아베 총리가 NHK와의 인터뷰에서 "개헌 스케줄은 있을 수 없다"며 "여러 정당과 논의를 계속해나가겠다"고 몸을 맞춘 것도 이런 상황과 무관치 않다는 해석도 나온다.
이와 관련, 아사히신문은 아베를 잘 아는 전직 정부 고위관리를 인용해 “자민당이 헌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건 만큼 중의원선거에서 이기면 아베는 국민들로부터 개헌승인을 받았다며 강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사히에 따르면 아베 정권은 이번 총선 결과를 토대로 올가을 특별국회 이후 임시국회를 열어 헌법 개정안을 제안할 것으로 보인다. 속도를 내 늦어도 내년 통상국회에선 개정안을 발의해 통과시키겠다는 것이다. 이후 곧바로 국민투표를 거쳐 헌법 개정을 마무리짓는 수순이다.
고이케 유리코(小池百合子) 도쿄도지사가 이끄는 보수신당 희망의당의 등장은 특히 아베 정권의 개헌론에 날개를 달아줄 것으로 예상된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26일 NHK 뉴스 프로그램에 나와 “어차피 고이케도 개헌파”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또 이번 선거에서 희망의당과 연대했던 간사이(關西) 지역 기반의 일본유신회 역시 보수주의 정당으로 개헌에 적극적이다. 선거 과정에서 이 두 정당은 아베식 개헌안엔 부정적인 견해를 피력했지만 이들의 주장은 오히려 ‘군대 보유를 못박아야 한다’는 자민당 내 강경파와 비슷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절충이 이뤄질 가능성이 크다.
아베가 밟을 ‘개헌 페달’의 속도를 늦출 수 있는 변수로는 개헌에 부정적인 국민 여론이 꼽힌다. ‘자위대 존재 명기’에 대한 일본 국민의 시각은 여전히 곱지 않다. 보수 성향의 요미우리신문이 지난 10~11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찬성 35%, 반대 42%로 나타났다. 아베의 생각과는 달리 ‘중의원 선거 승리=국민의 개헌 승인’이 아니며, 오히려 무리하게 개헌 드라이브를 걸 경우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