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까투리'는 지혜롭고 인자한 엄마 까투리와 네 마리의 새끼 꿩병아리가 숲속에서 지내며 겪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모성애와 형제애, 가족애를 엿볼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와 쉬운 스토리, 귀여운 캐릭터 등 여러 인기 요소를 담고 있어 본방송을 기다리는 어린이들이 적지 않다. 지난 17일 방송에는 놀이터를 망친 범인을 찾기 위해 네 꿩병아리가 엄마 까투리와 숲속을 찾아 나서는 에피소드가 다뤄졌다.
EBS '엄마 까투리', 육아는 오로지 엄마 몫
아빠 모습 찾아볼 수 없는 어린이 만화
어린이 대상 콘텐트일수록 내용 균형잡혀야
이에 대해 제작진은 지난 3월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원작 자체가 모성애를 주제로 다루고 있어 엄마와 아이들의 관계에 집중해 제작했다"며 "생태학적으로도 꿩은 수컷 1마리와 암컷 여러마리가 무리 지어다녀 실제로 암컷이 새끼 여러마리를 돌보는 경우가 많다"고 해명글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아직 방영되지 않은 에피소드를 통해 다양한 자연의 생태와 가족상을 소개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아빠가 육아에 참여하거나 아이들을 돌보는 에피소드는 아직 등장하지 않고 있다. 지난 10일 방송된 에피소드 속 고슴도치 역시 엄마와 새끼 고슴도치만 등장했으며, 다른 에피소드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늑대나 학, 백조 등 부성애가 뛰어난 동물들을 에피소드에 녹인다면 균형을 갖출 수 있지 않을까. 이를 꾸준히 챙겨보는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육아와 집안 일은 엄마 몫'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마지', '두리', '세찌', '꽁지' 등 각자의 이름으로 불리는 새끼들과는 달리 엄마 까투리는 이름 없이 그저 '엄마'로 불리는 것 또한 이같은 인식을 강화한다.
TV 만화 '와글와글 꼬꼬맘'에서도 아빠를 찾기가 쉽지 않다. 2009년~2010년 KBS에서 방영된 '와글와글 꼬꼬맘'은 2015년 유튜브에 업로드된 이후 현재까지도 적지 않은 부모와 자녀들이 챙겨 보고 있는 인기 만화다. '와글와글 꼬꼬맘'은 평화로운 마을을 배경으로 엄마인 꼬꼬맘과 10마리의 병아리가 겪는 좌충우돌 에피소드를 그리고 있다. 꼬꼬맘은 항상 분홍빛 앞치마를 입고 등장해 앞치마가 몸에 붙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까지 든다. 꼬꼬맘은 거의 매번 식사를 준비하거나, 집을 정리하고, 아이를 재우는 등 집안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빠 닭도 드물게 등장하는데, 아침밥을 먹고 출근하거나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는 모습으로 비쳐지기 일쑤다.
'엄마 까투리'도, '와글와글 꼬꼬맘'도 담고 있는 이야기 자체는 교육적이다. 그럼에도 고정된 성 역할을 반복적으로 보여주는 건 아쉽다. 불평등한 사회적 환경과 성 고정관념 등의 이유로 여전히 전업 '맘'이 월등히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 현상이 긍정적인 건 아니다. 만화가 이를 당연하게 만드는 데 일조해선 더더욱 안 된다. 그저 아이들이 보는 만화라고 쉽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그렇기 때문에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보는 그대로, 듣는 그대로 물 드는 존재가 아이들이다.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콘텐트는 젠더 감수성이나 폭력성 등에 있어 더욱 깐깐하게 들여다봐야 옳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