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영국 정부의 생각도 좀 다르다. 완성차 업체의 수, 연구개발(R&D) 경쟁력, 노동효율성에서 영국이 한국보다 훨씬 앞선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한국 자동차 부품 회사들에게 사업하기 좋은 영국으로 이사하라고 유혹한다.
찰스 헤이 주한영국대사는 “영국 자동차 산업을 알리고, 한국 자동차 기업에게 비즈니스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행사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주목할 부분은 영국이 이번 캠페인을 처음 발표하는 장소로 한국을 골랐다는 점이다. 영국 정부는 베어링·힌지·쇼크옵저버 등 29가지 자동차 부품을 상세히 나열하고, 이 부품을 영국에서 만들 경우 현지 시장 규모가 각각 얼마인지 금액으로 보여줬다. 리스트에 따르면 영국에서 당장 필요한 자동차 부품의 시장 규모는 총 40억 파운드(약 6조원)다.
R&D 경쟁력에 정부 규제 고려해
공장 영국 이전 시 지원책 내놔
노동생산성 낮은 한국,
영국이 ‘해볼만 하다’ 판단한 듯
놀라운 건 한국 자동차 부품 기업을 유치하겠다며 영국 정부가 제시한 통계였다. 영국은 한국 자동차 산업의 취약점을 정확히 꿰뚫고 있었다. 예컨대 한국 자동차 부품업체는 주로 매출의 대부분을 1~2개 완성차에 의존한다. 매출처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완성차 업체가 무너지면 부품사는 충격을 분산할 도리가 없다.
이를 의식한 듯 발표자는 영국 지도를 펼쳐 보이며 “영국에선 18개 자동차 브랜드가 24개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 부품사가 영국으로 건너간다면 특정 납품처에 목매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영국 정부는 “현실가능성 있는 기술이면서, 기존 제품 성능을 개선할 수 있다는 사실만 증명한다면 R&D 투자비 절반을 정부가 책임진다”고 약속했다.
중앙정부·지방정부 이중규제의 덫에 갇힌 한국 실상도 이미 연구를 마친 듯했다.
내글레이 스페셜리스트는 “영국은 유럽에서 가장 규제가 진보적(progressive regulatory)이고 법인세가 낮다”며 “후보지만 고르면 중앙정부가 지방정부 관계자를 직접 소개한다”고 말했다.
생산성만 높다면 절대 인건비는 문제가 아니다. 최근 한국 자동차 노동조합의 고액임금이 도마에 오른 것도 생산성이 낮아서다. 영국 국제통상부에 따르면, 영국 자동차 노동자 1명은 11만 파운드(1억6500만원)의 부가가치를 창출한다. 폴란드(3만 파운드)·체코(3만9000파운드)같은 동유럽 국가는 물론, 독일(10만 파운드)·이탈리아(6만5000파운드) 등 자동차 강국보다 생산성이 높다.
한국 자동차 산업의 취약점을 파고들면 한국 부품사를 영국으로 유치할 승산은 충분하다는 계산이었다. 행사장에서 만난 윤대성 한국수입차협회 부회장은 “영국이 자동차 산업 재도약을 위해서 정부까지 나서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고 말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