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프랑스인들이 질시하는 한국 원전 산업의 운명이 내일 결정 난다.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내놓을 권고안은 셋 중 하나다. ①공사 중단 ②공사 재개 ③유보. 어떤 결론이든 혼란과 반발이 불가피할 것이다. 혼란을 최소화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③유보부터 보자. 471명 시민참여단의 의견이 6~8%의 오차범위 내에서 팽팽할 경우다. 이때는 ‘현상 유지(Status quo)’ 공사 재개가 답이다. 오차범위 내라면 굳이 현재 상황을 바꿀 이유가 없다고 보는 게 여론조사의 정설이다. ②공사 재개라면 어떨까. 혼란이 있겠지만, 수습 가능할 것이다. 이미 청와대는 “공론화위의 결정과 관계없이 탈원전 국정 기조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탈원전 쪽은 전투에는 졌지만, 여전히 전쟁엔 이길 수 있다.
30년 먹거리 팽개치는 일
국민적 합의로 결정해야
더 근본적인 일도 있다. 탈원전에 대해 국민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다. 정부 스스로 이번 공론조사는 ‘신고리 5, 6호기 건설 여부’에 한정한다고 밝혔다. 탈원전은 국가 백년대계에 속하는 사안이다. 1년이든 2년이든 장시간에 걸쳐 국민 여론을 제대로 파악할 진짜 ‘숙의 여론조사’가 필요하다. 이번 공론조사는 출발부터 삐걱댔다.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도 컸다. 팩트 체크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투명성도 의심받을 수 있다. 공론화위는 1·2·3차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하지 않았다.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한 혐의가 짙다. 4차 여론조사도 5일 뒤 발표한다. 아무리 보안을 잘 유지한다지만 중간에 결과가 오염될 여지가 있다. 원전 재개 측이 참관 요청도 했지만 공론화위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러모로 결과에 대한 반발을 자초한 셈이다.
그러니 행여 이번 공론조사 결과가 ①공사 중단으로 나와도 이를 탈원전의 국민적 찬성으로 정부가 호도하는 일은 부디 없기 바란다. 그렇게 해서 한국의 원전 산업을 무력화하면 후대에 두고두고 원성을 살 수 있다. 물론 세상 어딘가에선 환영받을 수도 있다. 아마 프랑스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기회가 되면 문재인 대통령은 프랑스를 방문해 보시라. 혹시 아나. 프랑스 국민들이 자국 원자력 산업을 부흥시킨 일등 공신으로 환영해 줄지. 프랑스 대통령도 못 해낸 일을 했다며.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