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법치(法治) 경시가 불러온 참사라고 할 수 있다. 대통령은 헌법기관을 법에 따라 정당하게 구성해야 할 책무가 있다. 김이수 헌재소장 권한대행에 대한 국회 인준안이 부결됐으면, 국회의 결정을 인정하고 새 후보를 세우는 게 순리이자 법 정신이다. 하지만 임시방편으로 그쳐야 할 권한대행 체제를 편법으로 밀어붙이는 무리수를 뒀다. 청와대는 지난 10일 김 대행 체제 유지 발표를 하면서 지난달 18일의 재판관 간담회 결과를 근거로 삼았다. “헌재 재판관들이 김이수 대행체제 유지에 만장일치 동의했다”는 것이다.
민심 외면한 편법 강행이 초래
임종석·조국은 뭘 했는지 의문
둘째, 임종석 대통령비서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이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했는지 의문이다. ‘9·18 재판관 간담회’에 대한 편의적 해석을 막고, ‘대행 체제의 적법성’을 강조한 문 대통령의 페이스북 글을 말렸다면 지금의 사태까지 치닫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힘내세요 김이수’를 인터넷 검색어 1위로 올리자는 발상이 버젓이 진행된 걸 보면 참모들이 충성 경쟁 속에 민심을 왜곡하고 있다는 의심마저 든다. 국정에 반영될 국민의 뜻을 왜곡하거나 모른 척하는 행위는 불법과 다르지 않다.
셋째, 최순실 국정 농단의 반면교사를 벌써 잊은 듯하다. 박 전 대통령이 영어(囹圄)의 몸이 된 가장 큰 이유는 법치를 어겼기 때문이다.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국정을 최순실이라는 개인이 주무르도록 방조한 죄가 뇌물죄보다 훨씬 무거웠다. 법치 대신 사적 채널을 통한 사치(私治)가 비극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 사유 중 핵심은 헌법 수호에 대한 의지가 없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이번 사태의 수습은 대통령에게 달렸다. 문 대통령은 “조속히 임명 절차가 진행돼 헌재가 온전한 구성체가 되어야 한다”는 재판관들의 요구를 존중해야 한다. 진영 논리에 매달리지 말고, 중립적인 인물을 후보로 하루빨리 지명해 소모적인 논쟁을 접길 바란다. 코드와 오기에 집착하면 또 다른 참사가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