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 밖으로 강도 높은 발언에 청와대는 공식 대응을 하지 않았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에 대해 청와대가 언급하는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며 “반응하는 자체가 괜한 논란만 키우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민들이 억지 정치 보복 프레임에 동의할 리가 없다”고 주장했다.
국민의당 “정치 보복 운운 적반하장”
바른정당 “심경 고백 적절치 않아”
청와대 “재판 중” 공식대응 안 해
한국당, 바른정당과 통합도 주춤
박 전 대통령 윤리위 회부 불투명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수석대변인은 “박 전 대통령은 국민의 마음에 실망과 분노만을 안겨 주고 말았다”며 “박 전 대통령의 심경에는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국민에 대한 사죄의 마음이 없는 것”이라고 했다. 같은 당 민병두 의원도 “역사적인 재판에 흠집을 내려는 ‘사법 사보타주’”라며 “헌법과 법률 위에 군림했던 독재자와 부역자들의 퇴행적 정치공세에 불과하다”고 했다.
김철근 국민의당 대변인도 “탄핵된 국정 농단의 최정점에 있는 박 전 대통령의 정치 보복 운운은 적반하장”이라고 비판했다.
반면에 자유한국당은 박 전 대통령을 두둔하며 청와대와 여권을 공격했다.
전희경 한국당 대변인은 “(박 전 대통령의 발언은) 사법부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한국당의 문제 제기와 맥락이 닿아 있다”고 평가했다. 친박계인 김진태 의원은 이날 열린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에서 “꼼수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 연장을 해놓고서 (박 전 대통령이) 재판을 거부하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그 정도 말도 못하는가. 정말 해도 너무한다”고 했다. 친박계인 유기준 의원은 “상당한 정치적 파장이 예상되는 만큼 당내에서 논의 중인 출당 등을 진행하기 어렵다고 생각된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입장 차이로 한국당과 갈라선 바른정당은 미묘했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피고인 신분으로 방어권 차원에서 본인의 심경을 얘기한 것으로 정치권에서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다고 본다”고만 했다.
이 같은 공식 반응과 별개로 정치권 수면 아래에서는 “박 전 대통령이 벼랑 끝에서 다시 승부수를 던졌다”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특히 박 전 대통령의 출당과 보수통합 작업이 맞물려 있는 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난 셈이 됐다.
23일 미국 방문을 앞둔 홍준표 한국당 대표는 이번 주 안에 박 전 대통령의 출당을 마무리하고 바른정당과의 통합작업에도 박차를 가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날 발언으로 이런 구상에 먹구름이 끼게 됐다는 분석이다. 당장 17~18일로 예상됐던 윤리위 소집도 불투명해졌다.
홍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의 윤리위 회부 여부를 묻는 기자들에게 “그건 공식적인 자리에서 (발언)하는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한국당 측이 친박 청산에 주춤하는 분위기가 감지되자 바른정당 내 통합파도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통합파는 이날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보수대통합추진위원회에 대한 안건 상정을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안건 상정이 무산되면 통합파 자체적으로 통추위를 구성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신중한 행보를 이어갔다. 이와 관련해 통합파 측 김영우 의원은 “일단 국감을 마무리하고 정치적 결단은 그 이후에 하는 게 좋겠다는 (통합파 내) 공감대가 있다”고 밝혔다.
통추위 대변인 격인 황영철 의원도 “여러 사항들을 종합해 볼 때 국감이 끝나고 바른정당 전당대회가 예정돼 있는 11월 13일까지가 아무래도 중요한 시간이 될 거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자강파 측 진수희 최고위원은 “(통합파는) 안 그래도 명분이 부족한 상황에서 그나마 기댔던 박 전 대통령 출당마저 어려워지면 통합 논의를 중단해야 한다”고 통합파 측을 압박했다.
유성운·채윤경 기자 pirat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