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경찰관 1만 명 시대 <상> 여전한 성차별
경남 양산경찰서 형사과에 근무하고 있는 유일한 여형사인 내 이름은 박가영(36·순경). 내가 방금 통화한 그녀는 지난 6월 8일 발생한, 이른바 ‘양산 밧줄사건’의 용의자 A씨(41)의 어머니 B씨(70대)다.
여성 경찰관 현실은 … 30명 설문조사
“남자 선배가 누드 여성 연하장 보내”
민원인뿐 아니라 동료까지 성희롱
정보 외근직 가려 교육 받았는데
남성 위주 부서라며 여성은 꺼려
부서에선 얼굴마담 포장하려 해
각종 행사, 홍보사진에 꼭 동원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집에 찾아가고 전화 통화를 하면서 그녀를 계속 설득했다. 결국 사흘 만에 B씨가 입을 열었다.
“그날 아가(아들)가 잠시 밖에 나갔다가 왔다. 집 안에 있던 칼(커터칼)도 없어져 뭔 일을 저질렀구나 싶었다.” 결국 A씨는 살인 등 혐의로 구속됐다.
박가영 순경처럼 대한민국 여경들은 오늘도 현장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경에 대한 처우는 얼마나 많이 바뀌었을까.
중앙일보가 경찰의 날(10월 21일)을 앞두고 전국의 여성 경찰관 30명을 설문조사했다. ‘여경 1만 명 시대’ 여경들의 활약상, 고충과 제도 개선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1945년 미군정청 산하에 경찰의 전신인 경무국이 창설됐지만 여경은 46년 7월 처음 79명을 뽑았다. 당시 남성 경찰관(2만5000명)의 0.3% 수준이었다.
지난 6월 말 기준 대한민국의 여성 경찰관은 1만2611명. 전체 경찰관(11만6914명)의 10.8% 수준이다.
“정보 외근부서에 가고 싶어 별도로 관련 교육도 받았어요.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고 일을 잘할 자신도 있었거든요. 그런데 정보 외근부서가 워낙 남성 위주로 구성돼 여성 경찰을 꺼리더라고요.”(경기도 지역 40대 경찰)
“여성 경찰관이 표창·포상 대상이 되면 ‘니들은 여경의 날(7월 1일)에 받으면 되지 않느냐’며 후순위로 미뤄 서운했어요.”(인천 지역 40대 경찰)
근무하면서 성희롱 등을 경험했다는 의견도 30%나 됐다. 민원인도 있었지만 같은 동료에게 당하는 일도 많았다.
“같은 사무실 직원이 수사를 하려면 여러 경험을 해 봐야 한다며 나에게 성경험을 묻더군요.”(대전 지역 40대 경찰)
“선배가 연하장을 보내서 열어 봤더니 옷을 다 벗고 있는 여성이 절을 했어요. 불쾌했습니다.”(부산 지역 30대 경찰)
여경 인원이 소수다 보니 여경을 각 부서의 성과물을 홍보하는 ‘얼굴마담’으로 여기는 경우도 많다. 여경, 특히 미모의 여경이 미담 사례의 주인공이 되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조회 수가 더 올라가기 때문이다.
없는 사실을 꾸며내 논란이 된 경우도 있다. 2015년 충북 지역의 한 경찰서에서 신임 여경이 기지를 발휘해 수배자 검거를 한 것처럼 포장한 것이 대표적이다. 30명 설문에서도 46.6%가 “여경을 홍보에 활용하는 것이 불편하다”고 답했다.
“유치원 방문 등 각종 행사는 물론 홍보사진을 찍는데도 꼭 여경이 동원돼요. 문제 있는 것 아닌가요?”(전남 지역 30대 경찰관)
남녀 불평등 논란이 일고 있는 ‘여경의 날’에 대해선 찬반이 엇갈렸다. 하지만 ‘필요 없다’는 의견이 73.3%로 우세했다.
일각에선 여전히 “여성은 경찰관 업무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남성보다 약하다는 것을 그 이유로 내세운다. 하지만 윤우석 계명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사람들은 경찰 업무가 범죄자를 잡는 남성적 업무만 있다고 생각하는데 실제 힘쓰는 일은 20%가 채 안 된다”며 “경찰 내부에 다양한 역할이 있고 성에 따라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찾으면 된다”고 말했다.
윤 교수는 “경찰이 남성 중심의 계급문화를 가지다 보니 인권 침해나 수사 청탁 등 부정적 문제도 많았다. 조직을 좀 다변화하는데도 여경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최모란·이은지·김호·백경서 기자 moran@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