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외면한 한국...히딩크 사단 모셔가는 베트남

중앙일보

입력 2017.10.13 15:33

수정 2017.10.13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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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항서 베트남 축구대표팀 감독(오른쪽 두번째)이 11일 베트남축구협회와 정식 계약을 마친 뒤 대표팀 유니폼을 건네받고 있다. [연합뉴스]

동남아시아 축구의 신흥 강자 베트남이 한국 축구 DNA 이식에 나섰다. 특별히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한국대표팀의 4강 신화를 이끈 지도자들을 '콕 집어' 두 명이나 불러들였다. 한국 축구가 최근 불거진 거스 히딩크(71·네덜란드) 감독 축구대표팀 부임 논란에 단호하게 선을 긋고 나선 것과 대비되는 행보다.  
 
정해성(59) 전 축구대표팀 수석코치는 지난 12일 베트남 프로축구 V리그 최강팀 호앙아인잘라이(HAGL) 총감독으로 선임됐다. 전술에 밝고 선수들의 장·단점 파악에 능한 정 감독을 데려와 경기력과 자신감을 끌어올린다는 게 HAGL의 계획이다. 정 감독은 향후 HAGL의 1군부터 유소년 아카데미까지 모든 연령별 팀을 총괄해 이끈다.

박항서 감독, 베트남 A대표팀 사령탑 임명
정해성 감독은 리그 최강 HAGL 총감독 선임
'한국 축구 투지, 자신감 배워라' 과감한 투자

그보다 앞서 베트남축구협회는 박항서(58) 전 창원시청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한국 축구 특유의 투지와 조직적인 움직임을 배우기 위한 결정이다. 박 감독 또한 베트남 A대표팀 뿐만 아니라 올림픽팀(23세 이하)도 함께 맡는다. 2019년 UAE 아시안컵 본선에 베트남을 올려놓는 게 당면 과제다. 내년 8월에 열리는 자카르타-팔렘방(인도네시아) 아시안게임은 베트남 축구계가 '골든 제너레이션'이라 부르며 기대하는 20대 초반 선수들이 나서기 때문에 더욱 인기가 높다.

베트남 프로축구 최강 HAGL 총감독으로 부임한 정해성 감독. [사진 호앙아인잘라이]

 
두 한국인 지도자는 2002월드컵 당시 히딩크 감독을 도와 4강 신화를 이끈 경험이 있다. 정 감독은 트레이너로, 박 감독은 코치로 각각 2002월드컵 본선을 경험했다. 정 감독의 경우 지난 2010년 허정무(62) 감독을 도와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서 사상 첫 원정 16강을 이루기도 했다.  

 
베트남 축구계가 히딩크 사단 출신 두 지도자를 잇달아 영입한 이유는 한국 축구의 성장 노하우를 흡수하기 위해서다. 베트남 축구계는 유소년 유망주들을 대거 해외 유학시키고 실력 있는 외국인 지도자에게 배우게 하는 등 과감한 투자를 통해 청소년 레벨의 경쟁력을 급격히 끌어올렸다. 20세 안팎의 청소년대표팀의 경우 아시아에서도 한·중·일과 중동 못지 않은 강호로 인정 받고 있다. 청소년대표 에이스 르엉 쑤언 쯔엉(22·강원 FC)을 K리그에 진출시킨 것 또한 청소년 레벨의 상승세를 A대표팀까지 이어가기 위한 장기적 투자의 일환이다.    
 
정해성 감독과 박항서 감독을 베트남 축구에 이식한 주인공은 HGAL 구단주이자 베트남축구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응우옌 득 HGAL그룹 회장으로 알려져 있다. 축구계 관계자는 "정 감독 뿐만 아니라 박 감독의 연봉도 베트남 축구협회가 아닌 HAGL 그룹이 부담한다. 베트남 축구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득 회장의 의지가 강하기 때문"면서 "클럽 축구의 활황을 바탕으로 급성장 중인 베트남 축구가 대표팀 레벨에서도 경쟁력을 갖춰 한국을 위협하는 날이 찾아올 지 모른다"고 말했다. 한국 축구가 역대 최악의 부진을 겪고 있는 지금, 히딩크 사단 출신으로 히딩크 감독의 노하우를 공유한 두 한국인 지도자가 베트남에 축구 한류를 일으킬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진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2002월드컵 당시 한국과 포르투갈의 D조 조별리그 3차전에서 후반 25분 박지성의 골이 터지자 거스 히딩크 감독(오른쪽에서 두 번째)이 환호하고 있다. 맨 왼쪽이 박항서 당시 코치. [중앙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