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 개인으로선 참으로 고통스러운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는 이런 소회를 FTA 체결 당일(2007년 4월 2일) 발표한 담화문에도 담았다. 그는 “FTA는 정치의 문제도 이념의 문제도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다”라며 “(그런데도) 미국의 압력, 심지어 ‘매국’이란 용어까지 등장했다”고 썼다.
트럼프 체면 살려주면서
일본 끌어들여 난국 타개
협상은 투 트랙으로 이뤄질 것이다. 협정문을 고치는 것과 협정문 외의 것을 주고받는 것이다. 김종훈 전 통상교섭본부장은 “극단적으로 말하면 협정문은 다 고쳐줘도 된다”며 “진짜 문제는 (예컨대 환율조작국 지정 같은) 협정문 밖의 것”이라고 했다. 다른 것을 아무리 버틴들 경제 안보의 핵심인 환율을 공격당하면 한국 경제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어차피 이기기 어려운 싸움이라면 틀을 바꿔야 한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역발상이다. 양자 협상은 본래 강자들이 선호한다. 힘으로 누를 수 있어서다. 강대국에 대응하려면 작은 나라끼리 뭉쳐야 한다. 다자간 협상이 나온 이유다. 그렇다고 미국을 세계무역기구(WTO)나 주요 20개국(G20)의 틀로 끌어들일 수는 없다. 트럼프가 받아줄 리 없다. 마지막 한 수가 남아 있다. 한·미·일 FTA다. 트럼프에게 명분과 실리를 안겨줄 수 있다. 트럼프는 오바마의 유산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일방적으로 폐기했고 파리기후협약에서도 탈퇴했다. 그 바람에 미국이 국제적 리더십을 잃게 됐다는 비판이 미국 내에서 비등하다. 한·미·일 FTA는 TPP 못지않게 중국을 견제하는 효과가 크다. 게다가 이는 오바마가 아닌 트럼프의 업적이 될 것이다. 대미 흑자 2, 6위인 일본·한국을 끼워넣는 것이니 ‘아메리카 퍼스트’를 줄곧 외쳐 온 트럼프의 체면도 크게 세워주게 된다.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실익이 크다. 흔들리는 한·미·일 동맹을 강화할 호기다. 우리와 산업구조가 비슷한 일본을 끼워넣으면 매도 덜 맞을 수 있다. 최병일 이화여대 교수는 “이미 TPP에 합의했던 아베도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4차 산업혁명과 디지털 경제를 선점하는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일본과의 FTA는 진보좌파 대통령만 할 수 있다. 지금이 호기다. 두 번째의 기적이 기다리고 있다. 다음달 트럼프의 방한이 기회다.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야 한다. 역발상으로 트럼프를 설득해야 한다. 지난 방미 때처럼 “상호 호혜적인 FTA” 운운하며 공자 말씀만 또 늘어놨다간 본전도 못 찾을 것이다. 다시 고(故) 노무현의 담화문에 답이 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정치적 손해를 무릅쓰고 내린 결단입니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