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인스타인은 영화 산업을 혁신한 업계의 권력자이자, 진보적 활동을 적극 지지하며 미국 사회에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인물이다.
그를 둘러싼 스캔들은 지난 5일 뉴욕타임스(NYT) 보도로 시작됐다. 피해 여성 8명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는 여성들을 호텔로 불러 벌거벗은 채 마사지를 요구하는 등 상습적으로 성폭력을 저질러 왔다.
이런 그의 ‘범죄’는 업계에서는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보도가 나온 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조차 “그를 오랫동안 알았다. (보도는) 전혀 놀랍지 않다”고 밝혔을 정도다. 그러나 피해 여성들은 그의 우월적 지위와 권력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펄프픽션’ 등 제작한 하비 와인스타인
애슐리 쥬드 등 피해 여성 NYT 인터뷰
힐러리·오바마 가까운 민주당 지지자
오바마 딸 말리아는 인턴 고용하기도
페미니즘 지원…여성 행진에도 참가
“사과한다” 밝힌 뒤 “소송 준비” 돌변
그러나 NYT 인터뷰에선 20년 전 업무 협의인 줄 알고 초대받고 호텔로 갔다가, 샤워가운만 입은 그로부터 마사지해 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고 밝혔다. 웨인스타인은 주드에게 자신이 샤워하는 모습을 봐 달라고도 했다. 주드는 “그와 소원해지지 않으면서, 방을 빨리 빠져나갈 생각을 했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2014년 임시직으로 고용됐던 에밀리 네스터도 웨인스타인으로부터 “성적 요구에 응하면 경력을 키워주겠다”는 제안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신문은 그가 이듬해에도 벌거벗은 채 여직원에게 마사지해 달라고 졸랐다는 사실도 전했다.
영화 ‘스크림’에 출연한 여배우 로즈 맥고완도 97년 그와 합의했다. 당시 23세였던 그는 선댄스 영화제 기간 중 호텔 방에서 벌어진 일에 대해 웨인스타인과 10만달러에 합의했다. “혐의 인정이 아니라, 소송을 피하고 평화를 얻기 위한 것”이라는 합의문에 따라서였다.
신문은 그의 성범죄가 공식 활동과 완전히 배치된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미라맥스 로스앤젤레스’ 대표를 지냈던 마크 길은 NYT에 “밖에서 보면 오스카, 성공, 눈부신 문화적 영향력으로 빛났지만, 이면은 엉망진창이었다”고 밝혔다.
‘진보의 사자(liberal lion)’를 자처했던 그는 민주당의 오랜 지지자였으며, 지난 대선 땐 뉴욕 자택에서 힐러리 클린턴을 위한 모금 행사도 열었다. 특히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과는 각별했다. 오바마 재임 중 백악관에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열린 워크숍에 수 차례 초대됐다. 지난해엔 오바마의 큰 딸 말리아를 자신의 회사인 ‘웨인스타인 컴퍼니’ 인턴으로 고용했다.
성폭력 피해자들을 대변하며 ‘여성 권익의 옹호자’로 명망 높은 여성 변호사 리사 블룸의 이야기도 그가 영화화할 계획이었다. 이번 사건에서 웨인스타인 변호를 맡았던 블룸은 거센 비판 때문에 7일 사임했다.
NYT는 보도 이튿날 사설을 통해 “웨인스타인이 진보의 사자로서 위상을 키우는 동안 여성 피해자도 늘어났다”며 “그의 유력 친구들이 공개적으로 그의 악명높은 행동을 참을 수 없다고 주장해야 한다”고 전했다.
웨인스타인은 NYT 보도 당일 “과거 동료들에게 한 내 행동이 고통을 야기한 데 대해 사과한다”고 밝혔다. “치료를 받고 있으며, 문제 해결을 위해 휴직에 들어간다”고도 했다. 그러나 이틀 뒤인 7일 웨인스타인 측은 “기사는 거짓되고 명예를 훼손하는 진술로 가득하다”며 NYT를 고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웨인스타인은 NYT와의 소송에 헐크 호건의 섹스 비디오를 공개한 인터넷 매체 ‘고커’를 파산시킨 찰스 하더를 선임했다.
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