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쉽게 출연하지 못한 조훈현 9단을 포함, 조치훈 이창호 서봉수 유창혁 9단 등 다섯 명은 화려했던 한국 바둑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주역들이다. 이들이 활약하던 시기, 변방국이었던 한국 바둑은 당당히 세계의 중심이 됐다. 전설들의 명장면을 다시 한번 살펴보자.
1. '바둑 황제' 조훈현 9단의 세계 제패
-대국자: ●조훈현 9단 ○녜웨이핑 9단
-날짜: 1989년 9월 5일
-결과: 145수 흑 불계승
1980년대 중반만 해도 한국은 바둑의 변방국이었다. 당시 세계 바둑계의 스타는 중국의 녜웨이핑 9단이었다. 녜웨이핑 9단의 활약에 힘입어, 대만의 잉창지는 1988년 세계대회인 응씨배를 만들었다. 조훈현 9단은 한국에서 홀로 이 대회에 출전했는데, 조 9단을 주목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변이 일어났다. 조훈현 9단이 일본의 고바야시 고이치 9단, 중국의 린하이펑 9단을 연파하고 결승까지 오른 거다. 조 9단은 결승전에서 녜웨이핑 9단을 3대 2로 꺾고 초대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1989년 9월 6일 응씨배 우승컵을 안고 한국에 돌아온 조훈현 9단은 공항에서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기자회견을 했다. 또 프로기사 사상 최초로 종로에서 한국기원까지 카퍼레이드를 했다. 이 우승으로 조훈현 9단은 문화훈장까지 받는다.
바둑사를 바꿔놓은 이날 승리로 조훈현 9단은 한국의 일인자에서 세계의 바둑 황제가 된다. 또한 이 우승은 한국 바둑이 세계 최강이 되는 기폭제가 됐다.
2. '영원한 2인자' 서봉수 9단이 세계 일인자로 우뚝 선 날
- 대국자 : ●서봉수 9단 ○오다케 히데오 9단
- 날짜: 1993년 3월 9일
- 결과 : 219수 흑 불계승
하지만 그가 당당히 세계 일인자로 웅기한 때가 있었다. 바로 제2회 응씨배에서다. 서 9단은 제2회 응씨배 결승전에서 일본의 오다케 히데오 9단을 상대로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집념을 보여주며 우승을 일궈냈다.
최종국은 서 9단이 거의 패배한 바둑이었다. 오다케 히데오 9단은 종반 초입까지 필승의 형세를 짜놓았다. 하지만 중앙 백 대마를 방치한 것을 꼬투리 삼아 서봉수 9단이 변화의 빌미를 만들었고, 오다케 히데오 9단의 결정정 실수가 있었다. 서 9단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최종국을 가져갔다.
이날 승리로 서봉수 9단은 응씨배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자신의 존재를 만 천하에 입증했다. 아울러 한국 바둑의 저력을 세상에 알렸다. 이렇듯 '조-서' 시대는 찬란했다.
정아람 기자 a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