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중국 파트너가 점심을 먹자더군요. 나에게 뭘 부탁할 게 있다면서 말입니다. 나갔지요. 얘기가 잘 됐습니다. 도와주마 했지요. 반주로 시작한 백주가 조금 오르는가 싶더니 사드 얘기가 나왔습니다. 그 친구 갑자기 얼굴이 변하더군요. 거친 말이 쏟아냈습니다. 한국, 한국인을 욕했습니다. 내 얘기는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자리를 박차고 나왔습니다.
신선 농산물을 공급하는 사업가, 은행 대표로 나와 있는 지사장, 물류업계 대기업 주재원, 개인사업 사장... 모두 상하이에서 4,5년 많게는 10년 이상 주재했던 분들이다. 그들과의 약속대로, 익명으로 현지 분위기를 전한다.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B 사장의 지적이다. 그는 "민간이 스스로 알아서 한국 상품을 사지 않는 것일 뿐 정부 정책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중국 정부의 주장은 소가 웃을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알아서 긴다는 게 무서운 겁니다. 위(중앙)에서는 방향을 정합니다. 그러면 아래(지방, 기업)는 알아서 기는 겁니다. 우리 회사 파트너는 '위에서 저러니 우리도 어쩔 수 없다'라는 얘기를 많이 합니다. 중앙에서 '자 이제 한국 때리기 끝'이라는 사인이 나오기 전까지 보복은 사라지지 않을 겁니다.(신선 농산물 공급업체 C사장)
투자회사 주재원 D대표는 '한국'이라는 브랜드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 제품이라는 이유만으로 시장에서 환영을 받는 그런 시기는 지났다는 얘기다.
사드 이전에는 '한국 제품'이라면 한 단계 높은 상품으로 쳐줬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한국' 브랜드가 오히려 마이너스가 됩니다. 한류 이미지가 먹히지 않는 것이지요. 결국 가격이나 품질면에서 중국 상품을 이길 수 있느냐가 관건일 겁니다. 자신이 없는 상품, 서비스라면 가급적 빨리 정리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국이라는 브랜드에 편승해 쉽게 장사하던 시절은 지났다"는 지적이다.
대기업 주재원 E부장은 "중국 비즈니스에서 이제는 정치 리스크를 상수로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부장은 "한-중 관계가 이전으로 돌아갈 것으로 기대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설사 사드 문제가 해결되더라도 워낙 양국 간 내상이 심해 지금과 같은 '냉전' 상태가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상황을 새로운 균형, 즉 '뉴 노멀'이라고 했다.
물류업체 법인장 G사장은 그간 진행해온 현지화가 위기의 시기에 빛을 발하고 있다고 가슴을 쓸어내린다.
삼성, 금호타이어 등 한국 회사 제품 물류 포션이 회사 전체 매출의 약 3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 분야가 타격을 받고 있지요. 그러나 나머지 70%는 오히려 성장하고 있습니다. 최근 2~3년 꾸준히 진행한 현지 기업 인수합병(M&A) 덕입니다. 올 매출 1조원 돌파 목표를 향해 순항하고 있습니다.
현대자동차 얘기가 나왔다. 은행 지점장 H대표의 말이다.
백주가 서너잔 돌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화제는 정부의 대응으로 몰렸다. '정부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일을 잘 못 처리해 이지경에 왔다는 거 다 이해합니다. 그런데 기대했던 문재인 정부도 뭐 하나 보여주는 게 없는 것같아요. 우리의 대중 외교 스탠스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중국이 화를 풀때까지 이렇게 기다려야 하는 건가요? 그 사이 중국에 있는 우리 기업에게는 시퍼런 멍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두 시간여 계속된 만찬 대화, 질문만 나왔지 답은 없었다. 한 숨 소리만 더 깊어졌다.
상하이=차이나랩 한우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