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외국 자본의 인수ㆍ합병(M&A) 시도로부터 유럽 기업을 지키는 수호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국가 안보를 이유로 해외 자본의 유럽 기업 M&A를 규제하고 차단하는 조치를 도입하자고 주장한다. 이런 논의는 특히 중국 기업들이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마구잡이로 유럽 기업들을 집어삼키고 있다는 불안에서 비롯됐다.
중국은 미국보다 유럽에 더 많은 해외직접 투자를 하고 있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전했다. FT에 따르면 중국의 EU 직접 투자는 지난해 350억 유로(약 47조2000억원)에 달했는데, 전년 대비 3분의 2가량 증가했다.
중국의 대유럽 투자는 사회 기반시설과 에너지, 자동차, 교통수단, 기계 분야 등에 집중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미국은 엔터테인먼트나 금속, 광물 분야 등에서 경쟁력이 강한데 이런 분야에 대해 중국 측이 투자하려 하면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일례로 중국 달리안 완다 그룹이 미국 TV 프로덕션 회사인 딕 클라크를 10억 달러에 인수하려던 것이 거부됐다.
반대로 EU는 '분리 정복' 전략이 가능하다. EU의 한 국가가 중국의 시장 접근을 막으면, 중국 기업은 다른 회원국을 통해 EU 자유시장에 접근이 가능하다. 2012년 중국 통신회사 화웨이의 미국 기업 합병 건이 안보 차원에서 거부됐다. 하지만 화웨이는 유럽과 중동, 아프리카의 휴대전화 네트워크 설비망의 22%를 점유하고 있다. 이 비율이 북아메리카에선 3%에 불과하다. 지난 2012년 1건에 불과했던 중국 기업의 유럽 IT 기업 인수도 지난해 25건으로 늘었다.
하지만 이 같은 유럽 보호 행보는 자유 무역을 옹호하는 네덜란드와 북유럽 국가들의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해외 기업의 투자를 막는 이런 조치가 역내에서 보호 무역주의를 강화할뿐 아니라 경제민족주의에 기반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호무역 정책에 반대하는 EU의 입장과도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EU가 이런 조치를 취하면 다른 국가들도 이에 상응한 보복조치를 펼 수 있어 EU로 오는 해외직접투자를 줄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핀란드의 카이 마카넨 무역개발담당 장관은 “중국의 해외투자를 더 거칠게 들여다보는 것은 얻는 것은 별로 없이 무역 전쟁만 일으킬 위험이 있다"며 “프랑스와 독일, 이탈리아가 EU 본부가 있는 브뤼셀과 추진하려는 방안은 득보다 손실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프랑스와 독일에게는 기쁜 일이겠지만 중국이나 인도, 미국이 동시에 반발할 수 있다"며 “EU가 스스로 무역 전쟁에 가담하지 않더라도 이미 세계는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회의론은 핀란드를 비롯한 노르딕 국가들과 네덜란드, 그리스 등이 제기하고 있다. 마카넨 장관은 “EU 차원에서 대 중국 무역에 영향을 미치는 수단이 법제화하려면 유럽 의회가 뒷받침해줘야 한다"며 “파리와 베를린, 벨기에는 동맹을 열심히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마크롱 대통령이 이 문제로 상당한 타협을 이뤄내려면 수 년이 걸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