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노동조합은 트럼프다. 한국 자동차 노조가 왜 미국 대통령이냐고? 자다가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냐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제 땅의 일자리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쓴다는 점에서 둘은 많이 닮아있다. 초강대국이자 거대 시장이기도 한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트윗 하나로 국내외 기업의 투자 약속을 이끌어냈다. 한국GM 노조엔 트럼프가 거느린 3500만 명의 트위터 팔로워도, 다양한 정책 수단도 없다. 그들은 9월 중순부터 간헐적으로 부분 파업을 이어가고 있다. GM 철수설은 왜 자꾸 반복되는 것일까. 정말 철수할 것인가. 우리 정부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노조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어지는 궁금증을 하나씩 따라가 본다.
실제로 한국GM의 최근 3년 누적 적자는 2조원에 육박한다. 올 1분기에도 2589억원의 적자를 보면서 자기자본이 완전 잠식됐다. 2013년 말 한국GM의 자회사인 유럽 쉐보레 판매 법인이 글로벌GM의 결정으로 유럽에서 철수하면서 한국GM이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GM은 GM이 유럽에 공급하는 쉐보레 브랜드 차량의 90%를 수출해왔다. 이는 말리부 등을 생산하는 부평공장의 실적 부진으로 이어졌다. 유럽 수출이 급감한 것은 물론 쉐보레 브랜드 철수비용까지 상당폭 부담하면서 경영 상황이 악화했다. 전망도 밝지 않다. 올 3월 한국GM의 완성차와 KD(Knock Down, 완성품이 아닌 부품을 수출, 현지에서 조립해 판매하는 방식)부품의 유럽 수출 통로였던 GM의 오펠과 복스홀이 프랑스 푸조시트로엥(PSA)에 매각됐기 때문이다.
한국GM이 비틀거리면서 부천은 물론 인천지역 경제도 좋지 않다. 인천에는 완성차 업체인 한국GM과 650여개 자동차 부품 생산 업체가 몰려있다. 한국은행 인천본부에 따르면 인천의 자동차 및 자동차부품 제조업의 지역 내 부가가치 비중은 2000년 6.4%에서 2005년 11.7%, 2013년 17.4%로 확대됐다가 2014년에는 16.1%로 하락했다. 생산이 쪼그라드니 일자리도 늘지 않는다. 2015년 인천지역 자동차산업 종사자 수는 2만4000명으로 15년 전인 2000년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와 달리 같은 기간 전국 자동차산업 일자리는 67.6% 늘었다.
무엇이 문제였을까. 부평 현장에서 이를 확인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한국GM 측은 “관행적으로 노사협상 중에는 공장 내부 취재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한국GM은 현재 임금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노사 입장차가 커서 부분 파업이 이어지고 있다. 부평공장을 둘러보는 대신 회사 밖에서 회사 내부의 목소리를 들었다. 전문가와 정부 당국자의 반응도 다각도로 취재했다.
경기 침체에 유럽 쉐보레 판매법인 철수로 직격탄
몇 년 단위로 반복되던 GM 철수설이 다시 불거진 계기는 산업은행이 지난 7월 바른정당 지상욱 의원에게 보고한 ‘한국GM 사후관리 현황’ 보고서였다. 산업은행은 한국GM의 주식 17%를 갖고 있다. 나머지 77%는 GM 계열이, 6%는 GM의 우호지분으로 평가되는 상하이자동차가 들고 있다. 산업은행은 대우그룹 부도로 동반부실화한 대우자동차를 우여곡절 끝에 2002년 GM에 매각했다. GM이 현금 4억 달러를 출자하고 15년 간 지분 매각을 제한하는 조건이었다. 이 매각 제한 조건이 10월 16일이면 풀린다. 산업은행은 이 보고서에서 17% 소수 주주의 한계를 거론하며 “GM이 지분 매각 또는 공장 폐쇄 등을 통해 철수 실행시 저지 수단 부재”라고 못박았다.
글로벌GM의 최근 행보도 심상치 않다. 2014년 GM의 첫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오른 메리 바라 회장은 철저하게 수익성 위주의 선택과 집중으로 글로벌 사업을 재편 중이다. 호주·러시아·유럽·남아공·인도 등 성장성이 낮다고 판단되는 시장에서 생산공장을 폐쇄하거나 내수 판매를 포기하고 중국·미국 등 주요 시장과 전기차·자율주행차·카쉐어링 등 신사업 투자를 확대하고 있다. 한국GM은 철수설을 부인하고 있다. 박해호 한국GM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담당은 “한국GM은 글로벌 시장에서 GM의 주력 제품을 만드는 필수적인 생산시설”이라며 “한국시장은 글로벌 차원에서 의미가 적어 철수한 인도·호주 등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현장의 위기감은 더하다. 특히 크루즈와 올란도를 생산하는 한국GM 군산공장에서 임시생산중단(TPS)이 늘어나고 있다. 회사 측은 “군산공장 가동률은 50% 이하”라고만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익명을 원한 한국GM 관계자는 “한 달에 4~6일 정도만 정상 가동되고 있어 실제 가동률은 훨씬 낮다”고 말했다. 인천시가 파악한 군산공장의 2015년 가동률은 17.9%에 불과했다. 생산 현장에서는 지금도 그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생산라인을 일부러 늦춰 물량을 줄이는 경우가 다반사다. 현장에서 ‘짭다운’으로 통칭된다. 다른 관계자는 “짭다운을 고려하면 가동률 저하는 더 심각하다”고 말했다. 성국선 GM노조 군산지회 지부장은 7월 발표한 성명서에서 “지금 생산하고 있는 차마저도 야적장에 쌓아둘 공간이 없을 정도로 포화상태에 처해 있어 도로를 메우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노조가 이번 임금협상에서 임금을 넘어서 ‘생산물량 확보’와 ‘미래 비전 쟁취’를 핵심 구호로 내세우는 이유다.
산업은행의 매각 제한 조건 10월에 풀려
해법을 찾기는 쉽지 않다. 최근의 경영 악화를 바라보는 노사 간의 시각 차가 워낙 크기 때문이다. 회사 측은 고임금과 노사 관계를 문제로 본다. 박해호 담당은 “임금 상승으로 인한 비용 구조 리스크와 노사관계 리스크는 글로벌 GM의 단골 지적사항이었다”며 “GM의 글로벌 생산 체인에 차질을 빚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승렬 한국은행 인천본부 조사역도 “GM 본사는 한국GM의 생산 비용이 타 국가 사업장에 비해 높아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최근 통상임금 소송의 노조 측 일부 승소 등으로 인해 인건비 추가 상승도 우려하는 분위기”라고 분석했다.
노조 측은 GM 본사가 한국GM의 적자를 의도적으로 악화시킨 측면이 있다고 주장한다.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인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GM의 유럽 철수 ▶환차손을 비롯한 경영 실패 ▶본사와의 불투명한 이전가격 책정 등을 경영 악화의 원인으로 봤다. 그는 “디트로이트의 재채기가 바다를 건너면 한국의 독감이 된다”며 “한국GM 실적과 재무상황은 GM의 경영전략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고 말했다. 홍 의원의 지역구는 부평공장이 있는 인천 부평 을이다. 홍 의원과 마찬가지로 노조 역시 본사와의 거래에 적용되는 이전가격에 의혹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최근 5년 간 한국GM 재무제표의 매출원가율은 2013년(86.7%)을 제외하고 모두 90%를 넘어섰다. 특히 1조원에 육박하는 적자를 기록했던 2015년의 매출원가율은 96.5%에 달한다. 쉽게 말해 부품을 비싸게 조달하고 완성차를 글로벌 GM의 판매회사에 싸게 넘기면 매출원가율이 높아지고 그만큼 수익성은 나빠진다. 현대자동차의 지난해 매출원가율은 81.1%였다. 안재원 금속노조 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난해 글로벌 GM의 지역별 판매와 수익 비중을 보면 36%의 자동차를 파는 북미 지역에서 글로벌 전체 자동차 판매 수익의 거의 100%를 내고 있다”며 “이는 그간 GM의 자회사 노조들이 제기한 이전가격 의혹이 합리적으로 의심할만한 근거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분석했다.
부품 비싸게 사고 차는 싸게 팔아?
부평공장은 GM과의 45년에 걸친 질긴 인연이 있다. 부평이 자동차 생산의 메카가 된 계기는 재일교포가 세운 새나라자동차가 1962년 지금의 GM 부평공장 부지에 조립공장을 세우면서다. 닛산 자동차를 반제품으로 수입해 조립하는 수준이었지만 자력갱생으로 기술을 키워가던 시발자동차 같은 국산 업체의 몰락을 불렀다. 새나라자동차 역시 공화당 정치자금 사건에 휘말리면서 1년 만에 사라졌다. 부평공장은 1965년 부산에서 사세를 불려온 신진자동차에 인수됐다. GM은 1972년 신진자동차와 50 대 50의 지분합작으로 GM코리아를 출범시켰다. 이때 GM이 한국 자동차 역사에 처음 등장했다. 76년 신진의 경영난으로 산업은행이 지분을 인수하고 회사명도 새한자동차로 바꿨다. 78년 대우그룹이 산업은행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경영권을 넘겨받았다. 김우중씨가 대표이사 회장으로 취임했고 83년에는 회사명을 대우자동차로 바꿨지만 지분 절반의 주인은 여전히 GM이었다. 90년대 대우가 세계경영에 나서면서 동구권 진출을 추진하자 양측의 갈등이 커졌다. 결국 91년 대우차가 GM 지분을 넘겨받고 독자경영에 들어갔다. 외환위기 이후 대우차가 워크아웃에 들어가면서 해외 인수자를 물색했다. 2001년 우선협상자로 선정된 포드가 인수를 포기하면서 1년간의 힘겨운 매각 협상 끝에 2002년 GM이 새 주인이 됐다.
생산물량 감소가 발등의 불
지난해 한국GM의 부채비율은 무려 8만4980.7%에 달했다. 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한국GM은 어떻게 될까. 노조와 지역사회는 최근 ‘30만 일자리 지키기 대책위’를 구성해 정부가 나서 일자리를 지키는 쪽으로 GM과의 새로운 협약을 체결해달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정부는 뾰족한 수를 찾지 못하고 있다.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은 지난 9월 18일 국회 정무위 답변에서 “산업은행이 (우호지분을 합해) 83%의 지분을 가진 GM의 의사에 반대할 수는 없다”면서도 “GM 본사 입장에서도 한국이 작은 사업장이 아닌 만큼 쉬운 결정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원회 고위 당국자도 “일자리 문제는 안타깝지만 론스타의 아픔이 있기 때문에 고용 충격을 줄이는 대책 이외에는 정부나 산업은행이 나설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며 “GM이 선의를 갖고 한국 시장을 바라보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결국 중요한 건 GM이 한국 사업을 접고 철수하느냐 아니냐가 아니다. 과거 몇 년처럼 한국의 생산물량이 줄어드는 것 역시 ‘눈에 보이지 않는 철수’라고 할 수 있다. 효율성과 생산성을 따지는 냉혹한 자본의 논리를 무조건 비판할 수도 없다. GM의 투자 결정이 한국GM만이 아닌 GM의 전 세계 생산 체계와 판매 시장 전체를 고려해서 내려지는 만큼 GM의 글로벌 구조개편에 발 맞추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한국은행 인천본부는 “대대적인 GM의 글로벌 구조개편 속에서도 한국GM이 GM 내 생산·디자인·엔지니어링 허브로서의 역할을 지속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혁신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노조가 생산현장에서 이런 혁신의 일꾼이 될 수는 없을까. 트럼프가 활용하는 트윗의 역할을 ‘공장의 혁신’이 대신할 수도 있다. 일자리 지키기 싸움에 나선 금속노조 한국GM지부 앞에 놓인 숙제다.
서경호 논설위원 praxis@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