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에서 유명한 토스트기계 프로그램 이야기가 있다. 토스트기계를 프로그램으로 만든다면 이런 식이 될 것이다. ‘투입할 토스트의 가로 길이를 입력하세요, 세로 길이를 입력하세요, 두께를 입력하세요. 굽기 정도를 선택하세요. 위에 입력한 것이 맞으면 확인을, 취소하려면 취소 버튼을 누르세요.’ 아날로그에서는 그냥 식빵을 꽂고 전원 버튼을 누르면 끝난다. 도대체 디지털이 더 편리할 게 무엇인가?
도대체 디지털이 뭐가 더 편리한가
디지털은 믿음도 얻지 못하고 있다. 네덜란드에서는 열쇠를 더 선호한다. 디지털 도어록은 왠지 불안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신 주상복합 아파트라며 디지털 도어록도 장착되어 있다고 광고한다. 만일 고급 아파트에 일반 열쇠를 주면 소비자가 좋아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렇지만 그렇게 디지털 선호가 높은 우리나라에서도 전자투표는 믿지 못한다. 법은 전자투표를 허용하고 있지만 정치권과 현실은 여전히 종이투표를 선호하고 있다.
하지만 휴대폰이나 컴퓨터 없이 살 수 있을까? 단언컨대 없다. ‘아휴, 없어도 사는 데 지장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생각일 뿐이지 현실에서 그것은 불가능하다. TV프로그램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산속에 들어가서 사는 사람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는 사회적 동물이고 사회 속에서 어울려 살아야 한다. 현대사회에서 휴대폰이나 컴퓨터가 없이 산다는 것은 사회라는 섬에 내던져진 로빈슨 크루소나 다름없다.
대체로 우리는 새로운 기술로 만들어진 미래를 상상하기는 쉽다. 인공지능과 로봇 같은 것을 떠올릴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기술이 없는 과거를 상상하기는 굉장히 어렵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컴퓨터도 계산기도 없던 시절, 주판으로 계산하던 급여 처리와 회사 회계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제임스 글릭(James Gleick)이 쓴 [인포메이션]에는 적절한 비유가 나온다. ‘말(馬)을 한번도 본 적 없는 사람에게 말을 설명하면 사람들은 ‘바퀴가 없는 차(車)’라고 이해한다’는 것이다.
‘생각하지 않는’ 무능한 인간으로 전락?
현대인은 휴대폰 때문에 모두 등이 굽고 목이 늘어났다. 대화보다 문자가 익숙하다. 하루라도 휴대폰을 보지 않으면 분리 불안감을 느낀다. 심지어 진동이나 벨소리 환청을 듣기도 한다. 로빈 던바(Robin Dunbar)가 말한 인간이 관계 맺을 수 있는 150명 숫자를 넘어서 수천명이 휴대폰 속에서 매일 자질구레하게 속삭인다. 각종 업데이트, 안내가 시도 때도 없이 뜬다. 디지털 중독이다. 이러다가 니콜라스 카(Nicholas Carr)가 말한 것처럼 ‘생각하지 않는’ 무능한 인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 수밖에 없다.
그리스의 신 프로메테우스는 ‘먼저 생각하는 자’라는 뜻이다. 생각하고 저지른다. 반면 그의 동생은 에피메테우스다. 그는 행동부터 하고 ‘나중에 생각하는 자’다. 디지털 시대라면 둘 중 누가 얼리어답터(Early adapter)이고 누가 슬로어답터(Slow adopter)일까? 디지털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생각부터 해야 하나? 아니면 행동부터 해야 하나? 어쨌든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신은 프로메테우스였다. 그는 생각하고 나서야 행동하는, 꾸물거리는 사람(footdragger, laggard)에 가까웠지만 인간을 사랑한 신이었다.
21세기의 불은 디지털
하지만 세상이 그렇게 한가하지 않다. ‘가장 좋은 전자제품을 사기 위해 죽기 전까지 기다리겠다’는 사람을 현명하다고 하지 않는다. 여름 다 지나고 최신형 에어컨 사는 꼴이다. 남들이 모바일뱅킹으로 이체할 때, 자기 혼자 통장, 도장 들고 은행 찾는 사람이라면 항구에 정박한 배가 된다. 안전이야 하겠지만, 배가 항구에 있는 것이 목적은 아니다. 디지털 홍수 속에서 혼자라도 아날로그식으로 살아볼까? 모두 다 금연할 때 혼자 담배 피우는 사람처럼 버텨볼까? 하지만 건물 밖으로 나가 눈치 보면서 담배 피우고 국가에 세금까지 내는 꼴이다.
디지털의 물결, 서둘러 따라가야 할지 최대한 늦춰야 할지 정답은 없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인생 최고의 순간에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대는 사람들에게 ‘제발 미래가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즐기라’고 충고한다. 발리의 눈부시게 투명한 해변에서는 휴대폰을 끄고 태양과 파도를 느껴야 한다. 이탈리아 박물관의 걸작 예술품 앞에서는 휴대폰을 내리고 거장의 숨결을 음미해야 한다. 디지털은 우리를 포위했고 우리는 ‘현재’를 빼앗기고 있다.
지금의 20대들은 모태 디지털 세대다. 태어나 보니 컴퓨터가 있었다. 지금의 10대들은 모태 모바일 세대다. 태어나 보니 스마트폰이라는 것이 이미 있었다. 이들에게는 디지털이 본능이다. 30대~40대 젊은층은 학습 디지털 세대라고 할 수 있다. 본능이 아니라 머리로 디지털을 배운 세대다. 그렇다면 노장년층은 어디에 해당될까? 이들은 디지털을 ‘해석하는’ 세대다. 흔히 중년의 뇌가 가장 좋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 노장년층은 어쩌면 디지털을 다루는 데 서툴지만 가장 잘 해석할 수 있는 세대다.
혁신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
세상은 어쨌든 바뀔 것이다. 혁신의 속도는 더 빨라질 것이다. 20년 후면 “그 당시에는 사람이 운전을 했었지. 졸다가 앞 차를 추돌해 사람이 죽기도 했었어”라는 말을 손주들에게 해주는 노년이 생길 것이다. 집집마다 각자 키운 인공지능이 가장 오랜 벗이 되고 집사가 될 것이다. 내 주변 지인들의 연락처를 기억하고 세금을 낸 영수증을 보관하고 식구들의 생일을 챙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변화는 피할 수 없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했다. 하지만 즐기는 것은 중독과는 다르다. 다루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의 직업은 대장장이었다. 불을 잘못 다루면 화마가 되지만 적당히 잘 다루면 쇠붙이를 이용해 다양한 것을 만들 수 있다. 100세 시대가 펼쳐질 21세기의 불은 디지털이다. 디지털을 잘 즐기면, 유발 하라리(Yuval Harari)의 말처럼 우리는 신이 될지도 모른다. 디지털을 즐겨야 한다.
[박스기사] ‘디지털 디톡스’에 관심 커져 - 디지털 단식·피곤 언급량 갈수록 늘어
사람들이 디지털 단식 선언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퇴근 후에도 메신저나 e메일을 통해 이어지는 업무 지시에서 해방되기 위해서다. 지난 1월 프랑스에서 발효된 새 근로계약법은 근로자들의 접속 차단 권리를 보장해, 근무시간 외 e메일을 보내거나 받지 않을 권리를 두고 사업장과 직원이 협상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8월 국민의당 이용호 의원이 퇴근 시간 이후 카카오톡 등 SNS 메신저를 통한 업무지시 관행을 금지하는 이른바 ‘퇴근 후 카톡 금지법’을 대표 발의했다. 이에 따라 ‘카카오톡 금지법’은 인터넷에서 크게 주목을 받으며 빅데이터 언급량이 2015년 929건에서 지난해 5892건으로 폭증했고 올해는 3656건으로 꾸준히 증가 추세다.
디지털 홍수 속 일종의 도피처가 되는 아날로그에 대한 향수도 커지고 있다. 아날로그 관련 언급량은 2015년 기준 33만4203건을 기록했으며, 2016년 48만2445건으로 급증했고 올해는 36만4059건으로 아날로그 열풍은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다음소프트 관계자는 “아날로그 열풍을 두고 디지털 피로 누적에 따른 단기적 유행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과도한 디지털 사용 측면에서 보면 아날로그에 대한 관심은 거대한 흐름”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4차 산업혁명과 함께 디지털 문화가 더욱 고도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이 때문에 디지털 디톡스를 실현하려는 사람도 점차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번 분석은 다음소프트가 디지털·아날로그와 관련해 추출한 빅데이터(블로그 3억8553만건, 트위터 83억8069만건, 뉴스 2579만건)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임문영 인터넷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