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뭐니, 하고 묻자 H는 자신이 근로장학생으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같이 일하는 학생들 중 복학생 한 명이 ‘단톡방’을 만들고는 교직원들에게 명절 선물을 할 것을 제안했다고 한다. 거기에 대부분의 학생이 수긍했는데, H는 이것이 옳은 일인지 잘 판단이 서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H에게 선물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답해 주었다. 교직원들은 부서별로 대학 마크가 각인된 추석 선물을 받는다. 정규직 교수들에게도 선물이 배달된다. 그렇다면 근로장학생 역시 대학 행정 노동의 일원으로서 같은 선물을 받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러나 그들은 중간관리자에게 해야 할 선물을 고민하고 있었다. 그에 더해 ‘아버지 같은’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걸렸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부모에게 명절 선물을 하는 대학생은 거의 없다.
그 추석에, 근로장학생들은 아마도 교직원들에게 선물을 했을 것이다. H에게 굳이 물어보지 않았기에 그 이후의 일은 잘 모르겠다. 나는 다만 ‘아버지 같은’ 그 교직원들이 그들이 내민 선물을 되돌려주고 그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을 감사의 말과 함께 전해 주었으리라고 믿는다. 대학생들이 그렇게 두 개의 명절 선물을 들고 자신의 진짜 부모에게 돌아갈 수 있었다면 모두에게 즐거운 추석이 되었을 것이다.
H도, 복학생도 이제는 모두 졸업해 사회의 일원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학에는 여전히 명절에도 숨은 노동자인 근로장학생들이, 대학원생 조교들이, 시간강사들이 있고 교문 바깥에도 인턴과 계약직 노동자들이 있다. 부디 주변을 돌아보는 2017년 추석이 되기를 바란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