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은 개·돼지 발언 술 취해 한 것, 나중에 해명"…나향욱 전 기획관 승소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2017.09.29 16:56

수정 2017.09.2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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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은 개·돼지”라는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던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에게 파면 처분을 한 것은 부당하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부장 김국현)는 29일 나 전 기획관이 교육부 장관을 상대로 낸 파면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했다.

경향신문 기자 등과 식사하며 '민중 개·돼지' 발언
비난 여론 들끓자 지난해 12월 파면, 소송 제기
재판부 "파면할만큼 중대한 비위로 보기 어렵다"

“민중은 개·돼지” 발언을 한 나향욱 전 교육부 정책기획관이 파면처분을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 1심에서 승소했다. [중앙포토]

 
나 전 기획관은 지난해 7월 7일 경향신문 기자 등과 저녁 식사를 하며 “민중은 개·돼지” “신분제를 공고화해야 한다”고 말한 사실이 보도된 뒤 같은 해 12월 파면됐다. 당시 인사혁신처 중앙징계위원회는 ”공직사회 전반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실추시켰고, 고위공직자로서 지켜야 할 품위를 크게 손상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법원은 “파면 처분은 징계 처분 중 가장 무거운 처분으로, 신분 박탈뿐 아니라 공무원 임용 자격 제한, 퇴직급여·퇴직수당이 제한된다”며 “원고의 행위가 중과실로 평가될 수 있을지언정, 징계 기준상 파면을 해야 할 경우로 보긴 어렵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나 전 기획관이 문제의 발언을 한 것은 사실로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지난해 7월 12일 교육부 감사에서 나 전 기획관이 “전혀 하지 않은 이야기까지 기사를 쓰지 않았을 것이지만 다소 왜곡·과장한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진술하거나, 사건 다음 날 경향신문 편집국에 찾아가 “어제 과음과 과로가 겹쳐 본의 아니게 표현이 거칠게 나갔다”며 사과한 점 등이 근거가 됐다.


그러나 이런 사실을 종합해도 파면이라는 처분은 나 전 기획관의 비위에 비해 지나치게 과중하다고 봤다. 먼저 당시 네 명이 소주 5병과 맥주 8병을 나눠 먹고 취한 상태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점이 고려됐다. 재판부는 “나 전 기획관이 당시 가장 많이 마신 것으로 보인다”며 “술을 많이 마시고 논쟁을 하다가 해당 발언을 했다”고 말했다.
 

나향욱 전 기획관. [중앙포토]

 
또 나 전 기획관이 발언을 철회하진 않았지만, 기사에 나온 취지는 아니라고 해명한 점도 이유로 들었다. 기자 등이 문제를 제기하며 앞으로 대화를 녹음하겠다고 하자 “개·돼지 이야기는 영화의 어떤 언론인이 한 내용을 그냥 인용한 거야” “이 사회가 조금이라도 나아지려면 어느 정도 인정하는 게 있어야 할 거 아니냐” “그게 지금 우리 현실이니까” 등의 해명을 했다는 것이다. 
 
재판부는 “나 전 기획관이 문제가 될 것을 예상했지만, 자존심이 상해 발언을 철회하거나 잘못된 발언임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외에도 나 전 기획관이 23년 3개월 동안 공무원으로 근무한 점, 2002년 국무총리표창과 2011년 장관급표창을 받은 점, 해당 발언이 자신의 불찰임을 인정하고 뉘우치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