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태어난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 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년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나 죽어 이 흙 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김민기가 짓고 양희은의 노래한 ‘늙은 군인의 노래’다. 한때 내 심정을 이 노래 가락에 실어 부르자면 이렇다.
"나 태어난 이 강산에 공관병이 되어
무엇을 하였으나 무엇을 바라느냐
전역해 얼굴 안보고 잊으면 그만이지." (‘젊은 공관병의 노래’)
나는 대한민국 건장한 청년으로 입대한 군인이다. 그러나 동시에 집사이며 하인이며 몸종이었다. 때론 나도 헷갈렸다, 내가 지키는 게 대한민국인지, 아니면 지휘관의 심기인지를.
나는 내 나이를 모른다. 다들 국군과 같이 태어났다고들 생각한다. 군 부대는 대개 외진 곳에 있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지휘관을 배려해서 내가 생겨났다. 나의 첫째 임무는 군 지휘관이 퇴근 후에도 24시간 부대와 연락를 유지하는 것이다. 공관을 관리하는 임무, 더 쉽게 말하자면 공관에서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는 일은 기타사항이었다. 그러나 어느새 제1 임무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기타사항이 제1 임무로 뒤바뀌었다. 지휘관 뒷바라지만 해도 벅찬데, 지휘관 가족도 내 소관이 됐다.
나는 지휘관을 모시지만, 실질적인 지휘관은 대개 사모였다. 지휘관은 잠깐 보는 사람이지만, 사모는 하루종일 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나를 유명인으로 만들어준 박찬주 육군 대장의 부인 전모씨만 봐도 그렇다. 전씨는 나를 상대로 한 ‘공관병 갑질’ 사건의 사실상 주범이다.
이런 사실들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박 대장 부부는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박 대장은 뇌물수수 혐의가 드러나 구속됐다. 부인 전씨는 민간 검찰의 수사를 받는다. 나를 사병(私兵)처름 부리는 관행은 도마에 올랐고, 결국 나를 폐지하기로 결정됐다.
국방부는 공관병 제도를 30일 폐지한다고 29일 밝혔다. 공관병 198명의 편제를 삭제하고 공관병으로 복무 중인 113명은 다음달 전원 전투부대로 보낸다.
대신 최전방 부대를 포함해 상시 대비태세 유지가 필요한 부대의 경우 공관병 대신 경계병과 상황병을 둘 수 있기로 했다. 경계병과 상황병은 공관병과 달리 공관 내부에 상주하지 않는다.
‘복지지원병’으로 분류되는 골프병 35명과 테니스병 24명은 지난 1일부로 폐지됐다. 복무 중인 59명의 보직도 바뀌었다.
국방부는 군 마트(PX) 판매병에 대해서는 순차적으로 민간인력으로 대체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일 1차로 40명의 민간인을 뽑았다. 2021년까지 군 마트 판매 인력 1600여명을 채용할 방침이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