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퍼는 일본 소프트뱅크 산하 로봇 제조사인 ‘소프트뱅크 로보틱스(SBRH)’가 개발했다. 사실상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의 작품이다. 앞서 손 회장은 2012년 ‘알데바란 로보틱스’라는 프랑스의 휴머노이드 개발사를 인수, 그룹 내에 편입하고 SBRH를 설립하면서 로봇사업에 공을 들여왔다. 2014년 기자회견을 열어 직접 페퍼를 공개한 것도 손 회장이었다.
CJ·우리은행 등 7곳 시범 도입
사람 감정 인식하는 ‘서비스 로봇’
개발 3년 만에 전 세계 1만대 판매
2010년 만든 영어교사 로봇 ‘잉키’
프로젝트 끝나면서 상용화 실패
“단순 기술보다 서비스 접목 중요
추상적 목표 아닌 핀셋 정책 필요”
사람의 표정 등으로 감정을 읽어내 맞춤형으로 말하고 행동할 수 있는 게 대표적이다. 원리는 클라우드 방식의 인공지능(AI). 기존 로봇들처럼 내부에 모든 데이터를 저장하는 대신 외부 인터넷 서버와 통신하면서 AI를 통해 상황을 판단하는 것이다.
로봇 강국이라는 한국의 기업들이 국산 대신 일본산(페퍼)에 관심을 가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일본이 휴머노이드에 강한 탓도 있지만 한국이 서비스 로봇 분야에서 뒤처져서다. 2015년 기준 세계 로봇시장에서 서비스 로봇이 차지하는 비중은 38%. 한국은 15%에 불과했다. 그해 한국은 중국에 이어 규모 면에서 세계 2위의 로봇 출하(3만8285대) 국가였다. 그런데도 국내 생산량보다 수입량이 1.7배로 더 많았다. 주로 일본산을 수입했다.
단기 성과에만 급급한 것도 국내 로봇 생태계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앞서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지능로봇개발사업단은 2010년 영어교사 로봇 ‘잉키’를 개발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미국 타임지가 ‘올해를 빛낸 발명품’으로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2013년 연구 프로젝트 기간이 끝났다는 이유로 정부가 손을 놓자 진화도 발걸음을 멈췄다. 담당 부처가 당시 과학기술부에서 지식경제부로 넘어가면서 손에 잡히는 성과만을 사업단에 요구하다가 흐지부지됐다. 반면 일본 업체들은 장기적 관점에서 최장 20여 년간 로봇 기술을 축적해 왔다.
즉 정부가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일관성 있는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분석이다. 또 정책의 초점을 ‘로봇산업 육성’이라는 추상적인 범주에서 벗어나 ‘서비스 로봇 강화’처럼 핵심을 찌르는 방향으로 재설정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물론 기업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소프트뱅크는 페퍼에 안주하지 않고 올 들어 세계 1위 로봇업체인 미국의 ‘보스턴다이내믹스’를 구글 모기업 알파벳으로부터 인수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