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무고시 대체, 2013년 도입된 외교관 후보자 선발제
선발시험 합격 뒤 1년 교육 받고 5~10%는 무조건 탈락
공정성 위해 '현장 중심' 아닌 지필고사 위주로 교육
"실력과 상관 없이 무조건 탈락 비현실적. 개선 필요"
문제는 이런 상대평가 탈락제가 교육 과정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공정성을 유지하려다 보니 이론 강의, 지필고사 위주로 교육 과정이 운영되고 있다. 현장 중심의 실무 교육을 해서 곧바로 업무에 투입할 수 있는 정예 외교관을 키우자는 본래 목표도 달성이 어려워졌다.
이로 인한 후보생들의 불안 증세도 심하다. 국립외교원이 지난해부터 심리 상담 예산을 정규 편성했을 정도다. 2017년 해당 예산을 4300만원으로 책정한 데 이어 2018년도에도 3800만원이 필요하다고 최근 예산안을 국회에 냈다.
지난해 심리 상담을 받은 후보생은 전체 37명 가운데 33명이었다. 1인 평균 상담 회수는 5.7회였다. 올 1~4월에는 후보생 40명 중 34명이 상담을 받았다. 상담 사유로는 대인관계 갈등, 스트레스가 38%로 가장 많았다. 정서 및 심리상태 상담이 22%로 뒤를 이었다. 국립외교원은 “상당수 교육생이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 불안 등 정신 건강의 문제를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의원실은 “어려운 시험을 통해 우수한 후보생을 뽑은 뒤 정작 교육하는 과정에서 정신적으로 골병이 들게 만드는 상황”이라고 했다.
당초 외교관 후보자 선발제도는 본지의 ‘서희 외교 아카데미’ 제안(2007년 1월)에서 비롯됐다. 본래 제안은 ^1차 외무고시로 임용 외교관 정원의 2~3배수 선발 ^2년 간 석사과정 ^2차 외무고시로 정원 선발 등이 골자였다. 하지만 실제 제도화 과정에서 정원의 105~110%라는 극소수만 선발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학위도 인정 않는 것으로 변했다. 외교관 임용에서 탈락해도 학계 등 다른 분야에서 외교 역량을 발휘하도록 해 외교 인재의 풀 자체를 넓히자는 본래 취지가 변질됐다.
세금 들여 키운 인재를 무조건 탈락시키는 것도 모순이지만, 이로 인해 외교관 후보자 선발 시험을 보는 것 자체를 꺼려하는 풍토가 조성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립외교원도 “1년 간 교육을 받은 뒤 임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우수한 인재들이 응시를 기피하는 현상이 있다. 외교관 후보생 제도 도입 이후 외무고시에 비해 경쟁률이 하락했다”고 인정했다. 외무고시 시절 경쟁률은 통상 수백 대 1 수준이었지만, 후보생 선발시험의 최고 경쟁률은 35.8 대 1이다.
절대평가로의 전환 등을 통해 탈락을 위한 경쟁이 아니라 적격자를 골라내는 식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 의원은 “현행 외교관 후보생 선발 제도는 실력과 상관 없이 누군가는 반드시 떨어져야 하는 비현실적 제도”라며 “우수한 외교관 선발을 위해 경쟁 체제는 유지하되, 강제 탈락 방식에서 부적격자만 걸러내는 방식으로 전환하는 등 개선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